이혜경과 김애란이 온다.
한국문학에 관한 무슨 콜로키움이려니 싶은데, 자세한 건 모르겠고, 아무튼 '이혜경'이라는 이름에 놀라 콜로키움의 시간과 장소를 수첩에 적어두었다.
이혜경. 10년도 넘은 이름이다. "길 위의 집"이라는 소설이 무슨 문학상인가를 받았을 때. 오늘의 책의 선반에서 집어들었었나. 아무튼 그 소설, 참 좋았다. 참 깊은 시선을 가진 작가라고 느꼈었다. 그 후에 어떤 문학계간지(아마도 창비)에서 "불의 전차"라는 단편을 읽은 기억도 있다. 그 단편도 좋았다. 그리고는 다시는 이혜경의 소설을 읽지 못했다. 소설을 읽지 않게 된 것이다.
그래서 김애란이라는 작가에 대해서는 아예 아는 바가 없다. 이렇게 얘기하니,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김애란에 대해서 이런 저런 귀띔을 해주었다. 시간이 되면 가서 이혜경 얼굴이라도 보고 싶은데, 김애란의 단편 하나라도 읽고 가는 게 성의려니 싶어 도서관에서 책을 빌렸다. 둘의 소설집들은 이미 누군가 다 대출해간 뒤고, 나는 이런 저런 이천년대 작가들의 단편을 모은 소설집을 빌려 "누가 해변에서 함부로 불꽃놀이를 하는가"를 읽었다.
이혜경과 김애란을 빌미로 사람들과 한국 소설 얘기로 한참 수다를 떨었는데, "제가 한국 소설 읽은 건 윤대녕까지였어요"라고 말하니 누군가 깔깔 따라웃었다. 문학계간지를 읽고, 신간소설을 들춰보고, 새로운 작가가 나오면 그 책을 꼭 읽어보고 하던 것. 윤대녕까지였던 것이다. 그러니까 아마 1998년쯤까지.
그 후로도 가령 은희경 소설집을 몇 개 읽었었고 이상문학상 수상작 몇 개를 읽었지만, 영원히 내가 읽은 한국 소설은 윤대녕까지일 것이다. 김훈도 읽고 박현욱도 읽고, 이해할 수 없지만 어쩌다(세상에 어쩌다!) 김형경도 읽고, 생각해보면 외국작가들의 소설도 그런대로 꽤 읽은 편인데, 그래도 영원히 내가 소설을 읽은 것은 윤대녕까지일 것이다. 그러니까 일종의, 시간의 어떤 정지선 같은 것. 그 무렵에 나의 어떤 일부는 영원히(영원까지는 아니더라도) 멈춰버린 것이다.
칙릿 소설 같은 거 빼고는 대부분 다 좋아해요, 누군가 말했고, 김연수 모르세요? 한동안 문학상을 다 휩쓸었는데, 누군가 말했고, 저도 그래요 소설 안 읽은지 오래 됐어요, 누군가 말했고, 김애란 정말 재미있어요, 소설 잘 써요, 또 누군가 말했다. 저녁 먹으러 가는 길에는, 왜 또 그런 말을 했을까, "저는 소설 취향은 무척 보수적이에요. 관념적인 소설 좋아하고. 카프카나... 쿤데라 좋아하고... 아까 그랬잖아요, 윤후명 소설도 좋아했다고." 그러자 또 누군가 말했다. 그럼 정말, OOO 소설은 못 읽으시겠어요. 또 누군가, 정말요, 정말 OOO은 못 읽으시겠네요. 그런데 그 OOO가 누구였는지 그 이름이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비슷비슷한 무렵에 비슷비슷하게 오르내리기 시작한 그 '여성작가들' 중 하나였는데.
아무튼 이혜경이 온단다.
"길 위의 집"은 기억컨대 "너, 너, 너. 조용히 해, 이 개새끼들아" 라는 낮고 차가운 딸의 음성으로 시작되었다. 지금에 와서는 거의 기억나지 않는 그, 길 위에 서 있던 그 가족의 내력과 상처.
가족에 관한 소설을 더 읽고, 논문에서도 가급적 많이 언급할 생각이다. 언젠가 블로그였는지 미니홈피였는지, 그런 말을 쓴 적이 있는데. 소설은 아주 남성적 언어로, 논문은 가급적 여성적 언어로 쓰고 싶다고. 아무튼 여기 있는 동안, 소설책을 많이 읽을 생각이다. 아무튼 이혜경이 온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