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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의도시

1369 coffee house




cambridge에서 처음 정을 붙인 까페. 우연히 지나가다 들르게 된 이 까페는 나
중에 누군가의 얘길 들으니 나름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커피맛도 좋고 머핀이나
브라우니도 맛있고 책 읽기도 좋아서 여러번 들르게 되었다. 까페 문을 열고 들
어가면 좁고 긴 실내. 대부분 혼자인 사람들이 좁은 테이블에 노트북을 켜고
작업을 하거나 책을 읽으며 앉아있는데, 대부분 입구 쪽을 향해 한 방향으로
앉아있어서 그런지 마치 도서관 같은 느낌을 준다.

이 까페는 central square에 가까이 자리잡은 cambridge 시청 옆에 있는데
이 동네 분위기는 걸어서도 금방인 harvard square와 사뭇 다르다. harvard
square에도 홈리스들이 많지만 central square는 홈리스들에게 왠지 더 편안
한 동네일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리고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인종이
harvard square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ethnic 음식을 파는 레스토랑들도 많다.

어제는 1369에 가서 까페 앞 벤치에 앉아있는데 건너편에 앉아있던 흑인아저
씨가 말을 걸어왔다. 앞니가 하나 없는, 착하고 순박하게 보이는 아저씨였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는데, 아저씨는 아무렇지도 않게 "내가 홈리스였을
때,"라고 여러 번 말했다. 어떤 일본 여자분이 그 아저씨가 홈리스 생활에서
벗어나도록 정말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했다. 키는 진짜 쪼그만데 너무너무
좋은 사람이라고, 오래도록 그 일본 아줌마 칭찬을 했다.

그래서 그런가, 아저씨는 일본에 대해서 정말 궁금한 듯이 여러 가지를 물었
다. 일본의 수도가 어디인지, 미국에서 일본에 가려면 얼마나 걸리는지, 일본의
지폐도 미국의 지폐처럼 전부 같은 색깔인지 등등. 그리고 나에게, 한국에도
흑인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했는데 계속 자신의 피부를 가리키면
서, 이렇게 검은 피부를 가진 사람을 정말 한국에서 봤느냐고 묻는 것이다. 그러
면서 중간 중간 "나는 african american"이라고, 아프리카,를 힘주어 발음하며
말하곤 했다.

"한 방울의 법칙(one drop rule)"이라고 하던가. 흑인의 피가 한 방울만 섞여도
흑인으로 간주하는 그 법칙이 너무 황당하게 느껴져서 그런지, 혹은 내가 눈썰미
가 없어서 그런지, 사람을 보아도 그 사람의 인종을 선뜻 알아보지 못하겠고 그러
고 싶은 생각도 없다. 흑인의 피가 섞였나보다 싶으면 남미나 남아시아 사람인 경
우도 있고, 몇 년 전엔 응당 백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자기 할아버지가 아메리
카 원주민(native american)이라고 한 적도 있다.

집 근처에 편안한 까페 하나를 발견하고 난 후로는 자꾸 그곳으로 가게 되지만,
1369는 그 까페 만큼이나 주변 거리의 느낌이 좋다. 한번 갔을 때와 두번 갔을
때가 다르고, 한두 번 걸을 때는 느낄 수 없는 것들을 수십 번 걸으면서 느끼게
되는 것. 그게 바로 도시의 정취다. 이 도시가 점점 좋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