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념의 좌표가 사라진 시대에 대학생이 되었다. 정직하게 말하면 마르크스의 사상도 내게는 삶의 신념으로 삼아야 할 사상은 아니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마르크스에 관한 나의 무지, 혹은 사회에 관한 나의 무지에 기인했겠지만, 어찌되었던 그것은 사실이었다. 나는 여태까지 마르크스적인 시각에 기대어 모든 수업의 사상가들에게 요약과 맞먹는 분량의 비판을 달아 왔다. 정작 그래서 내가 비판의 나침반으로 삼아온 이 사상가에 대하여는 비판이라고 할 만한 것을 내어놓을 자신이 없다. 확실히 밝혀두지만, 개인적으로 마선생의 말을 신봉하는 신앙인어서가 아니다.
마르크스는 비판한다는 것은 넘어선다는 것이라는 점을 보여줬다. 그는 포이어바흐와 헤겔을 비판적으로 넘어섰다. 하지만 나는 마르크스에 대하여 그렇게 할 자신이 없다. 넘어설 수 없는 대상을 비판하는 것, 그것은 맥 빠지는 일이다. 밤새도록 지난 글과 노트들을 읽으면서 생각했던 것은 그것이다. 언젠가는 누군가가 현대의 역사적 조건을 통해 그를 비판적으로 넘어설 날이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할 뿐이다."
이 아이에게 실례가 되는 일일지 모르지만, 나는 위의 문단들을, 내가 조교하는 수업의 쪽글에서 가져왔다. 이 아이, 라는 표현은 나에게 굉장히 깊은 애정의 증거이다.한 학기동안 수업조교를 하면서 여러 명의 학생들과 메일이나 쪽지를 주고받았고, 그 중 어떤 아이들은 아주 기억에 남는다. 위의 글을 쓴 아이는 그 중 하나다.
이십대를 다시 시작하고 싶은가?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아주 망설일 것이다. 이십대는 나에게 너무나 혹독하고 고통스럽고 자극적이며 거칠었다. 단호하고자 했으나 늘 망설였고 단 하룻밤도 편히 잠들 수 없었다.음습한 만큼 찬란하고, 모래바람처럼 건조하면서 또 갯벌처럼 질퍽거렸다. 나는 그때 내 인생이 시작되고 있다는 걸 몰랐다. 하루 하루를 버티고 견뎌야 했기 때문이다. 바로 다음날을 살아갈 일로 온 세포들이 들끓었다. 그러는 사이에 내 인생은 시작되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감지할 여력조차 없었다. 그리고 그 다음의 모든 과정들은 경로의존적인 것이었다. 처음의 갈림길로 되돌아가는 것이 가능하기는 했으되 쉽지는 않았다. 쉬웠다고 해도 가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나도 알 수 없었다. 원하는 게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이십대 초반의 저 아이에게, 저만한 자의식을 붙잡고 살아가겠다는 저 아이에게, 또 삶은 얼마나 쉽지 않을 것이며 그 가혹함은 저 아이에게 얼마나 잘 어울릴 것인가. 내가 저 아이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기껏해야 열 몇 개의 쪽글과 몇번 주고받은 메일뿐이지만, 글이란 걸 읽으며 고통스러워하는 이십대 초반의 아이란, 문득 복합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것이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 부처를 만났으되 죽일 수가 없어서 밤새 잠들지 못하는 아이들이 어딘가에서 역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십대 초반의 어느날 일기장에, 나는 부모가 없는 세대라고 적은 기억이 난다. 지금도 여전히 어떤 이십대 초반의 아이들은, 부모가 없는 세대라고 스스로를 여길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마찬가지로 혹독하고 고통스럽고 자극적이며 거친 날들이 그들의 삶에서 계속될 것이다. 이것은 때로 경이를 가져다주는 일이다.
아, 그들의 삶에 더한 고통과 더한 상처가 곰팡이처럼 피어나기를. 그것이야말로 그들의 삶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버팀목이 되어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