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디션이 안 좋아
잠에서 깨어나서도 몸을 일으키지 않은 채
무심코 텔레비젼을 틀었다.
주부를 대상으로 하는 생방송 프로에
건축가 김진애가 나와선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한다.
이야기의 내용보다 그의 태도가 눈길을 끈다.
그는 자기 인생을 충분히 즐길 줄 안다.
만 서른을 살고 있는 나는
인생이 단 한번뿐이라는 사실을
겨우 깨닫고, 겨우 실감하며, 겨우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중이다.
그리고 생각한다, 진부하지만,
지금 내가 서 있는 여기가 내가 서 있고 싶은 바로 그곳인가를.
김진애의 얼굴을 곰곰히 응시하면서,
내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아무런 에누리도 남기지 않은 채
행복하다, 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은
좋은 그림, 좋은 글, 좋은 영화, 좋은 음악을 즐기는 순간,
인간의 관념과 감각과 영감이 창조해내는 것들을 보고 듣고 느끼고 상상하는 순간,
그리고그것을표현하고 싶어지는 순간들이다.
물론 나는 이 순간들을, 내 몫의 노동을 마친 후의
'여가'라 부르는 영역으로 밀어넣으며 살아갈 수 있다.
그리고는 속으로 되뇌이는 것이다,
어떻게 인생이 단 한번뿐일 수가 있을까, 라고.
물론 지금의 나도
곧잘 몰입하고, 곧잘 열광하며, 곧잘 행복해한다.
하지만 생리통 핑계로 집안에 틀어박힌 어느 아침이면,
사회학 논문들이나 절망과 분노를품은 온갖 시위들이
나와는 지구의 반대편에 있는 것만 같다고 느끼며
뜬금 없이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입시요강을 살피기도 하는 것이다.
나를 지금의 여기까지 끌고 온 동력들, 우연들, 필연들,
그 모든 것을 긍정하고 또 감사하지만
자꾸 또 다른 꿈을 꾼다.
그리고 마흔살을 꿈꾼다.
마흔살의 나는 지금의 나와 완전히 다르거나, 아니면 완전히 같은 이일 것이라고.
그리고 또 이럴 때면 폴 베를렌느의 시가
세상 그 무엇보다 끔찍하게 두려운속삭임이 되어
귓가에 웅웅거린다,
"말해 봐, 뭘했니? 여기 이렇게 있는 너는.
네 젊음을 가지고 뭘 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