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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대로

컴퓨터의 아우성

갑자기 컴퓨터들이 아우성을 쳐

한동안 단순노동을 했다.

좁은 방안에 노트북 두 대가 켜져 있는데,

룸메이트가 아마 어제부터 켜두었을 노트북이

굉음을 내며 요동을 쳤다.

프로그램들을 닫아주려 하니 말을 듣지 않는다.

잠시 후 그 유명한 파란 화면이 등장했다.

치명적인 사태가 벌여졌다는 영문 메세지와 함께.

 

그러자 사태에 동조라도 하듯

나의 작은 노트북이 세상과의 연결을 비장하게 끊어버렸다.

좁은 방이 답답해 식탁으로 자리를 옮겨 노트북을 두드리자

그 사태가 시작되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무선공유기의 신호는 잡히건만

연결이 되지 않는 상태에 돌입한 것이다.

 

연결을 클릭하고 암호를 입력하고

파란색 진행 표시가 회색의 빈칸을 다 채울 때까지 기다리고

다시 연결하라는 메세지가 나오면 그 과정을 다시 반복하고

그러면서 룸메이트 노트북을 훔쳐보며

0퍼센트라는 숫자가 천천히 하나씩 바뀌는 걸 보다가

 

문득,

19세기 말이던가 20세기초던가

전화기의 발명 소식을 전해들은 프랑스의 어느 작가가

"아니, 설마 사람들이 각자 자신들의 일을 하던 중에도

그 기계가 소리를 내기만 하면 하던 일을 멈추고

종처럼 그 기계에게 달려가는 일이

실제로 벌어질 거라고 기대한단 말이오?" 라고 했다는,

새삼스런 일화가 떠올랐다.

 

이렇게 테크놀로지에 의존적으로 살게 될 줄이야.

이젠 심지어 이것들이 생명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니까.

아우성칠 때면 철렁하고, 버벅대면 화가 나니

이게 어찌 생명체와의 관계가 아니겠나.

 

그나저나 해법은 역시 단순했다.

노트북의 전원을 끄고, 공유기의 전원을 끄고, 모뎀의 전원을 끄고,

잠시 기다리다 반대의 순서로 전원을 켜니

이 작은 노트북이 다시 세계와 화해한 것이다.

 

매번 느끼지만,

이렇게 단순할 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