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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위던지기

20060511

당위와 욕망. 도덕과 욕구.

생각한지 오래되었으나 기록한 적이 없어 적어두기로 한다. 당위와 욕망, 혹은 도덕과 욕구 중에서 언제나 더 진실한 것은 후자 쪽이다.덜 억압적인 것도, 더 해방적인 것도 후자 쪽이다. 무엇보다 전자의 항들은 폭력적일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의 욕망과 욕구를 관찰하고 인정하며 표현하는 것에 미숙하다. 미숙하도록 훈련받았기 때문이다. 모종의 훈련을 (혹은 성찰을) 거친다면 자신의 욕망과 욕구를 관찰하고 인정하며 표현하는 것은 가장 자연스러운 일의 하나가 될 것이다. 그것이야 말로 인간적인 과정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보다 중요하게는, 자기 자신의 욕망과 욕구를 자연스럽게 표현하는데 익숙해질수록 타자의 욕망과 욕구에 대해 민감하게 감응하게 될 것이다. 그것 역시 인간적 과정이기 때문이다.

(인간적, 이라는부분을 수정해야겠다. 아마 자연적, 이라는 단어 정도로 대체해야 할 듯.)

욕망과 욕구의 항들이 당위나 도덕을 배반한다거나 단절시키고 파괴한다는 식의 통념은 (사실 이 통념은 이 시대에 지배적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욕망과 욕구는 장려되고 있다고 할 수있는데, 하지만 내가 여기서 적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는 아니다) 자신의 욕망과 욕구를 '자연적' 과정 속에서 관찰하고 인정하며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비자연적' 과정에서 돌출시키는 행위에 기인하는 것이며, 또한 당위나 도덕이 욕망이나 욕구에 대한 통제와 억압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혹은 바람직하다는)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슬프게도.

내가 평등의 개념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도 얼마쯤은 이와 연관되어 있을 것이다. 평등은 당위와 도덕의 언설 속에서는 의미를 가질 수 있지만, 욕망과 욕구의 차원에서는 아주 무력한 개념이다. 어느 누구도 평등을 욕망하지는 않는 것이다.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평등이란 무엇을 말하나? 여성과 남성의 평등이란 과연 어떤 것인가?

평등의 개념은, (적어도 신분제의 철폐 이후에는; 여기서 신분제란 하나의 비유다) 리얼리티의 차원에서 이야기하기 시작하는 순간너무도 단순한 산술적 범주로 전락해버리고 만다. 이것이 평등 개념의서글픈면목이다. 당위와 도덕의 무대에서 화려했던 주연배우가 리얼리티의 세계에서는 누추해져버리는 것이다. 맑스가 말한 것도 평등에 대한 것이 아니다.

욕망과 욕구는 보편적인 것이다. 욕망과 욕구를 갖지 않은 존재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욕망하고 욕구함으로써,인간은 개별성 속에서보편성과 만난다. 그리하여 다다르게 되는 어떤 한 길목이 바로fraternit욕망과 같은 빛깔을 가진, 형제애(그리고 이것을 자매애라고도 의역하자)의 붉은 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