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트랄라가 마치 제 몸에 칼을 긋는 듯
자학의 한복판에서 무기력하게 윤간당할 때,
절망과 폭력이 그녀를
시체처럼 짓밟았을 때,
상처 투성이로 실신한 트랄라의
반 나신을 마주한 소년 바비가
하염없이 눈물 흘리며 그녀의 나신을 옷으로 덮어주었을 때,
나는 그저 심장에 통증을 느끼며 울기만 했다.
엄마는 언젠가 말했다.
사람들은 모두 제 몫의 상처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내가 내 몫의 상처를 안고 태어났듯
너 역시 네 몫의 상처를 가지고 태어난 거라고.
그런 말을 하는 엄마에게서
제 몫의 상처를 안고 태어난 나는
이제 그런 생각을 한다.
그 상처를 알아볼 수 있는,
눈물 흘리며 가여워할 수 있는,
어루만지고 달래줄 수 있는,
비로소 아물어 새 살이 돋아나게 만드는,
그런 존재 없이 살아간다면
그게 얼마나 억울한 일인지
깨달을 수조차 없을지 모른다고.
벌거벗겨진 여자의 몸에서
나신이 아니라 상처를 보는 것,
눈물 흘리며 그 나신을 옷으로 덮어주는 것,
그건 분명히
어떤 한 존재와 다른 한 존재의 사이에서 가능한
가장 근원적인 그 무엇에 관한 이야기이다.
1950년대 뉴욕의 뒷거리.
절망적인 밑바닥 삶의 군상들을 그린 영화,
하지만 나에겐 역시 트랄라의 상처투성이 나신으로 기억되는 영화.
불현듯 떠오른 트랄라에 관해
독백하듯 중얼거리다 집으로 돌아온 밤,
한없이 슬픈 OST를 꼭 듣고만 싶지만 찾을 수 없어
비슷한 이야기를 또다시 중얼거리다...
2004.0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