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생각해온 사실이지만, 내가 가진 감정의 현(絃) 중 가장 예민하고 핵심적인 것은 슬픔의 현이다. 그 줄이 건드려질 때마다 가슴에 물리적인, 실제적인 통증을 느낀다. 그리고 그때마다 이것이 바로 궁극은 아닌가, 생각한다.
그리하여 언제부턴가 나에게 이 세계는, 슬픔을 가진 세계와 그렇지 않은 세계로 양분되었다. 그러므로 사람들 역시 슬픔의 현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구분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블레이드 러너의 리플리컨트들을 알아보는 방식과도 같은 것이다. 실제로 그들을 구분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그러나, 모두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들은 다른 종류의 사람들인 것이다.
슬픔은 여러 곳에서 온다. 집을 나간 엄마에게서, 술을 마시는 아빠에게서, 헤어진 애인에게서, 잔혹하고 희망 없는 삶에서, 이유 없이 울게 만드는 음악에서, 비참하게 죽어간 낯선 사람의 부음 앞에서, 까닭 없는 공허와 우울의 한복판 위에서. 이런 여러 종류의 슬픔들은 제각각 몸 속에서 물로 흘러 바다를 이룬다. 슬픔의 현을 가진 사람을 알아보는 것은, 그러므로, 한 존재 안에서 깊은 바다를 발견하는 일과도 같다.
슬픔의 현을 갖지 않은 사람들. 그들을 싫어할 이유는 없지만, 아무래도 존경하거나 부러워할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들 안에는 바다가 없기 때문이다. 슬픔이 부재한 세계 역시 마찬가지다. 덜 슬프겠지만, 동경할 수는 없다. 그곳에는 바다가 없기 때문이다.
그 바다에 빠져 때로 익사할 것 같지만, 물이 없이는 살 수가 없다. 너무나 슬픈 글을 읽다가, 흘러내리는 물이 출렁이는 소리에 여기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