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변희재
에코echo
2009. 2. 1. 02:13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오래 전의 일이기는 하지만
언젠가 신문을 읽다 한숨을 쉬며 덮은 적이 있다.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글이 형편 없었던 것이다.
무슨 기획 특집 류의 기사였을 텐데, 팩트도 논리도 없고
감각도 없고 문장조차 형편 없어 놀라울 정도였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때 나는, 독서량이 많지 않고
문장력도 없고 (진보든 보수든) 특별한 세계관도 관점도 없는
90년대 중반 학번들이 언론사에 입사해서 글을 쓰기 시작했구나,
라고 생각했었다.
"(이런 호칭이 온당하다면)386 세대"에는 몇몇 걸출한 필진들이 있었다.
그들이 걸출한 필진으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것은 대개 서른 무렵.
좋은 학력에 촘촘한 사회연결망을 가진 그 세대가 필자로 데뷔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좋은 학력[을 가진]... 세대"라는 이 표현이 얼마나 어불성설인지.
내가 써놓고도 되뇌이건대, 이게 바로 "386세대론"의 함정 아닌가?)
하지만 (대졸학력을 가정하자면) 90년대 학번의 경우 사정은 달라져서,
서른 무렵에 필자로 주목받은 경우는, 특별한 전문분야가 아니고서는,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던 것 같다.
그런 틈을 비집고 들어선 것이 변희재다.
변희재의 글은 무언가를 강하게 주장하는 듯하지만 실은 거의 주장하는 바가 없고
항상 무언가를 비판하기는 하지만 비판의 논리와 근거와 철학이 얄팍하고
엉성하고 산만하다. 한 마디로 별로다. 그렇지만 그는 곧잘 주목받는다.
아주 이따금 그의 글을 읽을 때마다, 다 읽고 나서는 한숨을 쉬며 생각한다.
왜?
왜 이렇게 형편 없는 글을 쓰고도 필진으로 대접받을까?
답은 너무 간단하다. 다른 요소들을 다 차치하고, 일단 별 대안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세대, 지금 30대 중후반에 걸쳐 있는 그 세대에는
이렇다 할 필진이 없는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너무하다.
비판하거나 논박하는 것도 무의미할 만큼 형편 없는 글이
한 나라의 대표적인(?) 일간지에 버젓이 실리다니.
변희재의 글을 이따금 읽을 때마다
내가 속한 세대의 슬픈 자화상을 보는 것 같다.
일상의 코드들을 가장 많이 전복시킨 세대.
처음으로 대학시절에 해외여행을 시작했고
처음으로 졸업 후 극심한 취업난을 겪어야 했던 세대.
20대 초반에는 신세대로 X세대로 불리웠지만
정작 사회적으로는 획득한 것이 거의 없는 세대.
그리하여 자기 세대의 필진으로 변희재 정도나 낳고 만 세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