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가는대로
동물애호가의 고백
에코echo
2008. 9. 26. 09:10
며칠간 앓았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지독하게 몸살을 앓는 건 아주 어릴 때부터였다.
어렸을 적에는 체온이 40도 넘게 오르곤 했었는데, 조금 크고 나서는
그 정도는 아닌 듯. 아무튼 태평양 건너와서도 계절은 바뀌고, 계절이
바뀌는 것을 몸이 알아채 또 몸살에 걸렸다.
몸살의 기미가 느껴지던 어느 오후, 아무래도 닭과 마늘을 고아서 먹
어야겠다 싶어 귀가길에 마켓에 들렀다. 꼭 읽어야 하는 페이퍼들이
있어서, 이번에 지독하게 앓으면 끝장이다 싶은 마음.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닭과 마늘을 고아서 먹겠다는 것. 그리하여 닭고기를 파는
코너에 가서 닭 포장육을 집어드는데, 문득 기분이 묘해졌다.
반으로 잘려 포장되어 있는 닭고기 반마리를 보면서, 어떤 존재의 육
체성 같은 것이 느껴지는 것이다. 어떤 한 육체, 그 육체로 육화되어
있던 어떤 한 존재, 그 존재와의 갑작스런 대면 같은. 그래서 나도 모
르게, "미안해, 내가 너무 아파" 이렇게 조그만 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나도 모르게 조금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7-8년쯤 전, 광우병 기사를 보고 나서 채식을 시작한 적이 있다. 한 반
년쯤 하다 그만두었는데, 채식을 그만두게 만든 여러 가지 이유들 중
한 사분의 일쯤은 '동물애호가' 취급 받는 게 싫어서였던 것 같기도 하
다. 이따금 외신기사 같은 곳에 등장할 것 같은, 동물의 고통을 함께
아파하는 착한 이십대 여자애가 되는 기분.
채식이라는 게 사회적이거나 정치적인 의미로 독해되기 쉽지 않은 때여
서기도 하겠지만, 아무튼 나는 동물의 고통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산업
화한 도축, 유통, 이윤창출과 소비의 시스템을 거부하는 거라고, 혼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태평양 건너 이 작은 도시의
어느 작은 마켓에 들어와 반조각 난 닭의 포장육을 보면서, 애처럼 문득
"미안해, 내가 너무 아파"라고 중얼거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는 결국 참 나이브한 생각에 이르고야 말았다. 수많은 비판이론
들과 비판사회과학과 운동과 정치가 아무리 멀리 달아나도 결국에는
어떤 휴머니즘의 요소와 결별할 수 없는 것처럼, 아무튼 나는 그냥 동
물애호가인 것이라고. 그래서 유치찬란하게도, 닭 반마리 포장육을 집
어들면서 "미안해, 내가 너무 아파"라고 중얼거리고 있는 것이라고.
살수록 죄만 늘어가는 것 같다. 살면서 하는 일이라고는 죄 짓는 일뿐인
것 같다. 죄를 짓는 건 줄어들지 않는데, 무엇이 죄인지만 자꾸 알아가
는 것 같다.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게 참 미안한 일인 것 같다.
몸에는 여전히 몸살기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