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가는대로
봄밤
에코echo
2008. 4. 22. 01:43
홍대 주변, 집 근처의 까페.
노트북과 책, 논문 몇 개를 들고 까페로 기어들어갔다. 밤 늦은 시각.
남자 하나가 비슷하게 벽에 붙은 자리에 앉아 영어원서를 펼쳐놓고 노트북에 무언가를 정리하고 있다.
멍하니 정신을 차리며 커피를 마시다
수분이 지난 후에야 노트북 전원을 켠다. 책을 펴고, 논문들을 펼친다.
그런데 때마침 몇 명의 손님들이 들어선다.
두 팀이다.
처음에는, 그들의 존재가 별다르게 환기되지 않는다.
또 커피를 마신다. 원서를 읽던 남자가 나간다.
이로써 그 카페에는 혼자 앉은 여자가 하나, 남자 넷이 모인 테이블이 하나,
그리고 바로 내 옆 테이블, 남자 둘이다.
저쪽 남자 넷이 이야기하는 소리가, 그다지 데시빌이 높은 것도 아닌데,
쩌렁쩌렁 울리며 나의 고막을 향해 진군한다.
난데 없는 부동산 얘기.
상암동 주변의 땅값이 어떻다, 돈을 벌려면 천상 부동산이다,
그런 뻔한 이야기들.
나는 이따금 허공에 멍한 시선을 처박다
다시 노트북 화면을 응시할 뿐이다.
뻔한 이야기를 나누는 평범한 사람들.
여기까지는 단지 이런 정도의 생각이다.
정신이 혼미한 봄밤,
정신 차리기 위해 들어선 카페.
잠시 후
바로 내 옆 테이블의 젊은 남자들에게
카페의 주인인 듯한 여자가 다가와
반갑고 정겹고 다정하게 인사를 나눈다.
마치 무슨 음악동호회의 번개모임 같은 분위기.
활짝 젖힌 창에서 불어드는 봄밤의 바람.
그런데, 바로 그 테이블에서 시작한 대화는
예상치 못한 주제다.
게다가 시간이 흐르고 흘러도 그치지 않는다.
역시, 돈 벌려면 역시 주식이잖아요.
투자하면 삼사백 퍼센트는는 순이익이 나거든요.
누나, 기관투자자들의 동향을 잘 파악해야돼요.
지금까지 제가 투자한 진짜 돈은 삼백 밖에 안 돼요.
아니요, 대출은 안해요.
아, 아는 사람 돈 끌어오는 것도 안해요.
현금서비스요.
현금서비스 받으면, 잘해야 이자가 십 몇 퍼센트거든요.
현금서비스 받아서 주식 투자해서, 수익 난 걸로 이자 내면
엄청 남는 거죠. 그냥 공짜로 먹는 거예요.
야, 너 대단하다.
근데 저점은 어떻게 보는 거야?
음... 지금 대한항공 매수하는 거 어떻게 생각해?
유가? 역시 유가도 고려해야 하긴 하겠지...
그래도, 이번에 미국이랑 무비자협정 체결할 것 같은데.
그러면 대한항공이 좀 오르지 않겠어?
와, 현금서비스?
야... 너 그럼 순수익이 삼사백퍼센트?
나는 카페에 글 맨날 남기잖아. 모르는 게 많아서.
어머, 너 안티가 그렇게 많아? 이익 많이 나니까 질투하나보다...
이런 이야기들이 원치 않는 나에게 밀려드는 동안
문득 정말 세상이 끔찍해진다.
왜 그렇게 끔찍한 기분이었을까.
부동산 얘기를 나누고 주식투자를 한다 해서
그게 꼭 무슨 속물의 징표인 것도 아니고
그냥 2008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형상일 것인데
그런데 왜 그렇게 끔찍했을까.
'신용'을 기반으로 한다는 카드사의 현금서비스 시스템이
마치 매트릭스처럼, 이 숫자에 저 숫자를 덧붙여 좀 더 큰 숫자를 만들어내고
실제로 존재하는 이 세계의 물질성과는 아무 연관도 없는 가치의 증식이 이루어진다.
이 가공할 시스템.
아침이면 출근하고 저녁이면 퇴근하는 회사원으로 사는 게 싫어서
주식투자 동호회를 기웃거리는 어떤 여자들과 남자들의 삶에 대한 상상.
이게 과연 살아도 좋은 세상인가.
바람 부는 따뜻한 어느 봄밤, 커피집에서 불현듯 온몸을 덮쳐오던
참담 혹은 절망의 기록.
노트북과 책, 논문 몇 개를 들고 까페로 기어들어갔다. 밤 늦은 시각.
남자 하나가 비슷하게 벽에 붙은 자리에 앉아 영어원서를 펼쳐놓고 노트북에 무언가를 정리하고 있다.
멍하니 정신을 차리며 커피를 마시다
수분이 지난 후에야 노트북 전원을 켠다. 책을 펴고, 논문들을 펼친다.
그런데 때마침 몇 명의 손님들이 들어선다.
두 팀이다.
처음에는, 그들의 존재가 별다르게 환기되지 않는다.
또 커피를 마신다. 원서를 읽던 남자가 나간다.
이로써 그 카페에는 혼자 앉은 여자가 하나, 남자 넷이 모인 테이블이 하나,
그리고 바로 내 옆 테이블, 남자 둘이다.
저쪽 남자 넷이 이야기하는 소리가, 그다지 데시빌이 높은 것도 아닌데,
쩌렁쩌렁 울리며 나의 고막을 향해 진군한다.
난데 없는 부동산 얘기.
상암동 주변의 땅값이 어떻다, 돈을 벌려면 천상 부동산이다,
그런 뻔한 이야기들.
나는 이따금 허공에 멍한 시선을 처박다
다시 노트북 화면을 응시할 뿐이다.
뻔한 이야기를 나누는 평범한 사람들.
여기까지는 단지 이런 정도의 생각이다.
정신이 혼미한 봄밤,
정신 차리기 위해 들어선 카페.
잠시 후
바로 내 옆 테이블의 젊은 남자들에게
카페의 주인인 듯한 여자가 다가와
반갑고 정겹고 다정하게 인사를 나눈다.
마치 무슨 음악동호회의 번개모임 같은 분위기.
활짝 젖힌 창에서 불어드는 봄밤의 바람.
그런데, 바로 그 테이블에서 시작한 대화는
예상치 못한 주제다.
게다가 시간이 흐르고 흘러도 그치지 않는다.
역시, 돈 벌려면 역시 주식이잖아요.
투자하면 삼사백 퍼센트는는 순이익이 나거든요.
누나, 기관투자자들의 동향을 잘 파악해야돼요.
지금까지 제가 투자한 진짜 돈은 삼백 밖에 안 돼요.
아니요, 대출은 안해요.
아, 아는 사람 돈 끌어오는 것도 안해요.
현금서비스요.
현금서비스 받으면, 잘해야 이자가 십 몇 퍼센트거든요.
현금서비스 받아서 주식 투자해서, 수익 난 걸로 이자 내면
엄청 남는 거죠. 그냥 공짜로 먹는 거예요.
야, 너 대단하다.
근데 저점은 어떻게 보는 거야?
음... 지금 대한항공 매수하는 거 어떻게 생각해?
유가? 역시 유가도 고려해야 하긴 하겠지...
그래도, 이번에 미국이랑 무비자협정 체결할 것 같은데.
그러면 대한항공이 좀 오르지 않겠어?
와, 현금서비스?
야... 너 그럼 순수익이 삼사백퍼센트?
나는 카페에 글 맨날 남기잖아. 모르는 게 많아서.
어머, 너 안티가 그렇게 많아? 이익 많이 나니까 질투하나보다...
이런 이야기들이 원치 않는 나에게 밀려드는 동안
문득 정말 세상이 끔찍해진다.
왜 그렇게 끔찍한 기분이었을까.
부동산 얘기를 나누고 주식투자를 한다 해서
그게 꼭 무슨 속물의 징표인 것도 아니고
그냥 2008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형상일 것인데
그런데 왜 그렇게 끔찍했을까.
'신용'을 기반으로 한다는 카드사의 현금서비스 시스템이
마치 매트릭스처럼, 이 숫자에 저 숫자를 덧붙여 좀 더 큰 숫자를 만들어내고
실제로 존재하는 이 세계의 물질성과는 아무 연관도 없는 가치의 증식이 이루어진다.
이 가공할 시스템.
아침이면 출근하고 저녁이면 퇴근하는 회사원으로 사는 게 싫어서
주식투자 동호회를 기웃거리는 어떤 여자들과 남자들의 삶에 대한 상상.
이게 과연 살아도 좋은 세상인가.
바람 부는 따뜻한 어느 봄밤, 커피집에서 불현듯 온몸을 덮쳐오던
참담 혹은 절망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