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위던지기
20080822
에코echo
2008. 8. 27. 14:26
샌프란시스코.
powell 역에 내려 지저분한 새들을 비껴 계단을 올라서면서, 마음 속으로 소
리쳤다. 아, 샌프란시스코에 돌아왔어. 마치 고향에라도 돌아온 듯이. 그리고
는 샌프란시스코의 공기를 다 마셔버리겠다는 듯이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비누방울처럼 공기를 타고 날아갈 것도 같았다.
지난번 샌프란시스코를 다녀가면서 프리다 칼로 전시회가 SFMOMA에서
9월28일까지 열린다는 걸 확인하고 다음번에 오면 반드시 가리라 다짐해두었
었다. 비행기가 1시간 이상 연착되었고, 그래서 생각보다 늦게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했다. 기다리고 있을 부모님 생각에 발걸음을 서둘러 SFMOMA로
향하는 길. 그래도 샌프란시스코의 공기는 사람을 반쯤 미치게 만들었다.
프리다 칼로의 전시회는 관객이 많아 30분 단위로 기다려서 입장해야 했다.
이미 SFMOMA는 여러 차례 들락거렸지만, 이렇게 설레는 마음인 적이 있었
던가. 줄을 서서 기다리면서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다른 층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4층 프리다의 전시장으로 바로 향했다.
프리다 칼로의 작품들을 한번에 온전히 마주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림을 마주하는 것조차 힘들게 느껴질 만큼 그녀의 고통이 전이되는 것 같았
다. 자화상은 물론이고, 그녀의 정물화들조차 괴로워서 한번에 응시할 수가 없
었다. 병이 악화되면서 치료비를 위해 정물화를 그렸던 시절이 있었다고 하는
데, 그 때문인지 그녀의 정물화에서도 그녀 자신의 초상이 느껴졌다.

"나의 탄생"과 "머리카락을 자른 자화상"을 제외하고는, 좋아하는 작품들은
거의 볼 수 있었다. "몇 개의 작은 상처들(A Few Samll Nips)"은... 프레임까지
적색물감으로 칠해야 했던 프리다 칼로의 절망이 너무 생생해서 진저리가 처질
정도였다. "I hope the leaving is joyful; and I hope never to return." 죽기 전
그녀가 남긴 이 문장을 전시장의 벽면에서 마주하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
서 한참을 헤맸다.
그녀의 작품이 가진 원시성, 초월적이고 우주적인 신비와의 융화, 고통스러우
면서도 강인하고 여성적인 무엇에 한참을 사로잡혀 있었다. 무엇보다 그녀의
작품은 멕시코 전통회화의 체취가 가득하면서도 초현실주의적이고, 초현실주
의적이면서도 그녀가 말했듯 그녀가 바라보는 세계의 리얼리티를 고스란히
응축하고 있다. 그 모순된 요소들의 융합이란 경이로울 지경이지만, 아무튼
오래 바라보기에는 너무 고통스러운 그림들.
생전의 모습을 흑백사진으로, 그리고 몇 장의 컬러사진으로, 또 아주 짧은 비
디오 한편으로 보았다. 그녀가 내 눈 앞에서 서서히 살아나 움직이는 것 같았
다. 열 손가락의 손톱을 짙게 칠하고 멕시코 전통의상을 입고 머리에는 꽃무
더기를 꽂은 프리다. 아름답고 가련하고 경이로운 프리다.
powell 역에 내려 지저분한 새들을 비껴 계단을 올라서면서, 마음 속으로 소
리쳤다. 아, 샌프란시스코에 돌아왔어. 마치 고향에라도 돌아온 듯이. 그리고
는 샌프란시스코의 공기를 다 마셔버리겠다는 듯이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비누방울처럼 공기를 타고 날아갈 것도 같았다.
지난번 샌프란시스코를 다녀가면서 프리다 칼로 전시회가 SFMOMA에서
9월28일까지 열린다는 걸 확인하고 다음번에 오면 반드시 가리라 다짐해두었
었다. 비행기가 1시간 이상 연착되었고, 그래서 생각보다 늦게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했다. 기다리고 있을 부모님 생각에 발걸음을 서둘러 SFMOMA로
향하는 길. 그래도 샌프란시스코의 공기는 사람을 반쯤 미치게 만들었다.
프리다 칼로의 전시회는 관객이 많아 30분 단위로 기다려서 입장해야 했다.
이미 SFMOMA는 여러 차례 들락거렸지만, 이렇게 설레는 마음인 적이 있었
던가. 줄을 서서 기다리면서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다른 층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4층 프리다의 전시장으로 바로 향했다.
프리다 칼로의 작품들을 한번에 온전히 마주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림을 마주하는 것조차 힘들게 느껴질 만큼 그녀의 고통이 전이되는 것 같았
다. 자화상은 물론이고, 그녀의 정물화들조차 괴로워서 한번에 응시할 수가 없
었다. 병이 악화되면서 치료비를 위해 정물화를 그렸던 시절이 있었다고 하는
데, 그 때문인지 그녀의 정물화에서도 그녀 자신의 초상이 느껴졌다.


"나의 탄생"과 "머리카락을 자른 자화상"을 제외하고는, 좋아하는 작품들은
거의 볼 수 있었다. "몇 개의 작은 상처들(A Few Samll Nips)"은... 프레임까지
적색물감으로 칠해야 했던 프리다 칼로의 절망이 너무 생생해서 진저리가 처질
정도였다. "I hope the leaving is joyful; and I hope never to return." 죽기 전
그녀가 남긴 이 문장을 전시장의 벽면에서 마주하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
서 한참을 헤맸다.
그녀의 작품이 가진 원시성, 초월적이고 우주적인 신비와의 융화, 고통스러우
면서도 강인하고 여성적인 무엇에 한참을 사로잡혀 있었다. 무엇보다 그녀의
작품은 멕시코 전통회화의 체취가 가득하면서도 초현실주의적이고, 초현실주
의적이면서도 그녀가 말했듯 그녀가 바라보는 세계의 리얼리티를 고스란히
응축하고 있다. 그 모순된 요소들의 융합이란 경이로울 지경이지만, 아무튼
오래 바라보기에는 너무 고통스러운 그림들.
생전의 모습을 흑백사진으로, 그리고 몇 장의 컬러사진으로, 또 아주 짧은 비
디오 한편으로 보았다. 그녀가 내 눈 앞에서 서서히 살아나 움직이는 것 같았
다. 열 손가락의 손톱을 짙게 칠하고 멕시코 전통의상을 입고 머리에는 꽃무
더기를 꽂은 프리다. 아름답고 가련하고 경이로운 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