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echo 2008. 8. 27. 14:26
craigslist에서 마음에 드는 중고 tv cart를 발견해서, brookline으로 cart를
사러 다녀왔다. brookline은 하우징이 어려우면 그곳에서 집을 알아보라고
김모선생님이 추천해주었던 동네. cart 주인이 전화통화가 되자마자 오늘
왔으면 좋겠다고 해서, international office의 오리엔테이션이 끝나는 대로
바로 버스노선을 확인한 후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맑고 화창한 오후, 버스정류장에서 버스의 도착시간과 정류장을 확인해보려
고 map으로 다가갔는데 어떤 나이 든 아저씨가 말을 건네며 66번 타느냐고
묻는다. 좀 아까 지나갔는데 곧 올거라며 웃는다. 나는 고맙기도 하고 머쓱
하기도 해서 웃으며 인사하고는 조금 멀찍이 떨어져 서 있었다.

오래 지나지 않아 도착한 버스를 보고 정류장 쪽으로 다가서는데 아까의 그
아저씨가 다가와 인사를 건넨다. 통성명을 하는데, 아저씨의 이름은 페드로.
악수를 하고 같이 버스에 올라탔는데 아저씨가 자기 옆자리로 앉으라며 손
짓을 한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페드로 아저씨는 쿠바 사람이었다. 아, 쿠바라니. 그곳
에 가보는 게 꿈이라고 하니 아저씨는 웃으면서 왜냐고 묻는다. 음악, 풍경,
헤밍웨이... 이렇게 늘어놓으며 웃으니 피델 카스트로는 어떠냔다. 그리고는
토론토를 거쳐 쿠바에 가는 방법을 알려준다. 보스톤에 산지 29년이 지났다
는데, 미국인들은 결코 믿어서는 안되는 사람들이라면서.

대화가 지속될수록 페드로 아저씨는 미국에 대해 비판적인 이야기를 쏟아
냈다. 러시아와 조지아 사태에 대해서도 한참을 얘기하다가, 종내 오바마에
대한 기대라는 게 얼마나 허황된 것이냐며 일갈한다. 아무튼 긴 대화를
마치고 페드로 아저씨가 먼저 버스를 내릴 무렵, 나는 언젠가 다시 한번쯤
저 아저씨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속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tv cart는 마음에 들어서 1개에 12불씩 주고 2개 모두 샀는데, 한적한 동네
의 근사한 집에 살고 있는 백인 할머니의 컴퓨터 위에는 나부끼는 성조기
사진과 함께 "God Bless America" 활자가 인쇄되어 있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사교집단의 광신자와 함께 있는 것 같은 기분에 흠칫 놀라고 말았
다. 이것도 편견이려니 싶었지만, 얼른 집을 나서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tv cart를 2개나 장만했다. 이렇게 하나씩 장만하다보면
오래지 않아 텔레비전도 마련하게 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