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echo 2008. 8. 14. 11:55
호텔을 먼 곳에 잡은 아이들이 혹시 쓰게 될지 몰라 아침에 빈 아파트로 가서 짐 정리를 했다. 그러다 서둘러 학회장으로 향했다. cultural study 세션 장소를 찾아가니 발표자들 몇몇이 이미 도착해있었다. 세션의 organizer에게 인사를 했는데, 그가 나의 이름을 발음하기 위해 여러 차례 시도하다 결국 실패하는 것을 보니 조금 재미있었다.

세션의 참석자들 중에는 동아시아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그리고 참석했던 그 어느 세션보다 흑인이나 남아시아 출신의 유색인종들이 많았다. 다섯 명의 발표와 종합토론이 모두 끝난 후, 어떤 흑인 여자가 찾아와서 나의 발표에 관해 오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의 커멘트는 나의 발표에서 무엇을 더욱 명료하게 해야 하는지를 나에게 상기시켜주었고, 그리하여 진심으로 그녀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그녀와의 대화가 끝난 후 또 다른 흑인 여자가 찾아와 인사를 나누었다. 토론시간에, 잊을 수 없을 정도로 신랄한 커멘트를 발표자들에게 날린 사람이었다. 그 신랄함이 나를 향한 것은 아니었구나 싶어 모종의 안도감마저 느꼈다. 그 다음은 또 다른 인도 여자가 찾아와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나서 마지막으로 중국인 유학생과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연락처를 주고 받았다.

나의 발표는 식민주의에 관한 것이었는데, 발표의 quality보다도 이러한 주제의 발표가 형성하게 되는 어떤 종류의 교감에 대해서 오래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짧은 대화들을 거치며 내가 가지게 된 생각과 느낌과 감정에 대해 지금으로서는 어떻게 이름붙일 수가 없다.

세션이 끝나자마자 Kim Voss가 organizer인 세션에 들어가서 Peter Evans와 Jennifer Chun 등의 발표를 들었다. 공교롭게도, revitalizing labor였던가, 그 비슷한 제목으로 열렸던 이 세션에서 이랜드 노조의 파업이 중요한 사례로 거론되었다. "한국에서는 법이 임의적으로 적용된다"는 말을 미국인 교수들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한다던 목 선배 얘기가 문득 떠올랐다. 법이 어떻게 '임의적으로' 적용되냐는 것이다. 주변화된 노동자들의 저항이 두말 할 나위 없이 중요한 문제이기는 한데, 발표를 듣는 내내 아줌마들의 얼굴이 아련하게 떠올라서 조금 고통스러웠다.

세션을 모두 마치고 나서, 정혜가 예약해둔 덕에 그 유명한 보스턴 duck tour를 했다. 큰 기대가 없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보스턴의 풍경을 보다 근거리에서 압축해서 감상할 수 있었다. 아직은 여전히 역시 여행객이지만, 곧 그 거리들을 천천히 오래 걸어다니게 될 것이다.

컨퍼런스가 날을 거듭할수록 머릿속이 점점 조금씩 복잡해진다. 어서 논문에 몰두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