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208
오랜만에 일상으로 돌아온 기분이다. 이것은 참으로 사이버의 세계에 진열되기 좋을 종류의 삶의 패턴이기는 하지만 아무튼 일주일동안 도쿄에 머물렀다. 심지어 공항에서 비행기를 놓치는 바람에 예정보다 하루를 더 묵기도 했다. 내 인생에서, 도쿄에서의 하루가 그렇게 늘어났다. 그리고 그 하루는 지워지지 않을 하루가 될 것이다. 언제든 내 인생에서 다시 호출될한 시점이될 것이다.
이상하게도 일본행은 언제나 많은 스토리를 남긴다. 공식 일정을 함께마친 친구와, 도쿄라는 공간의 특정한 의미를 모두 지워버린 듯, 커피숍에서 몇 시간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심지어 시간이 어느 정도로 흘렀는지조차 완전히 잊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우리가 어디에서 와서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대화의 도중에 그는 울었다.
원래 원했던 것들. 이런 식의 구절은 언제나 여러 종류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대표적으로는, 지겹다거나 지긋지긋하다는 감정이 있겠다. 반복되는 회의나 자괴의 패턴이, 반복될 때마다 늘 동일하기에, '원래 원했던 것들'을 상기하는 일은 너무나 지겹고 지긋지긋하다. 동시에 그것은'시간성'에 관해 생각하게끔 만들기도 한다. 돌아갈 수 없는과거,개연성의 어떤 고리들을 떠올리게 만들고, 그래서 참으로 가슴저리면서도흥미로운 테마다.
원래 원했던 것들. 그와 나는 그런 종류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여러 상대와 참으로 여러 차례 오갔던 대화들처럼 그렇게 별다르지 않은 레파토리가 반복되는 동안, 역시 별다를 것 없는 모종의 태도가 내 안에서 생겨났다. (결심이나 각오라고 말해두기엔 그다지 비장하지 않다) '원래 원했던 것들'을 상기하는일이란 언제나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한탄스러울 것도, 자괴스러울 것도 없다. 모든 종류의 이상적인 것들이 그러하듯이, 어떤 삶에서도 그것은 완전히 구현되지 않는다. 내가 나의 삶을 질적으로 다른 형태로 뒤바꾸어버린다 해도 마찬가지이다. 혹은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내 삶이 온전히 되돌아간다 해도 그렇다. 완전히 구현되지는 않는 그 무엇을, 불완전하게 구현한다면 그뿐이다.
나는, '원래 원했던 것들' 이외의 것을 원한 적이 없다. 설사 다른 것을 원해본 적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너무나 하찮은 것이었다. 그러니까 가령 경제적으로 보다여유로운 삶이라든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삶이라든가, 보다 구체적인 예로는 특정한 직업이라든지 특정한 관계에서의 특정한 위치라든지, 삶의 특정한 시간표라든지, 이런 것들은 '원래 원했던 것들'에 비하면 너무도 하찮은 것이다. 하찮은 것에 주목할수록 삶은 함정에 빠진다. 적어도 그런 함정에 빠지지 않을 자신은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왜 '원래 원했던 것들'을 자꾸 잃어버린 세계 쪽으로 밀어넣으려 했을까? 다른 종류의 삶이 아닌 이런 식의 삶을 택한 것은 나 자신이다.늘 소극적인 선택을 해왔다고 생각했지만, 생각해보면 항상 내가 원하는 쪽의 선택을 해왔다. 그것이 늘 경로의존적이긴 했지만, 원하지 않는 것을 선택해본 적은 없다. 그리하여 '원래 원했던 것들'에서 스스로 멀어진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원래 원했던 것들'을 상기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일의 하나가 되어야 할 터이다. 원래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고, 원래 쓰고 싶었던 글을 쓰는 것이다. 절망은 그것에 미치지 못하는 나 자신을 목격할 때 생겨날 것이다. 가장 두려운 것은 나 자신이다. 가장 혹독한 비판자이면서 가장 냉정한 관찰자인 나 자신.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오랜만에 옛날 책장에서 책을 빼들어 읽기 시작했다. 역시 옛날 책이 재미있었다. 자극과 도전을 주면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이런 것들이 바로 '원래 원했던 것들'의 세계에 속하는 것이다. 나에게 주어진 수수께끼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채 남아있지만, 나는 내가 속한 세계 안에서'원래 원했던 것들'이 살아 숨쉬고 있음을 문득 깨닫게 되었다.
그리하여한 순간, 마음이 충만해진다.
이 즉흥성에 대한 관대함을 잠시만 허용해도 괜찮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