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레미 아이언스
애정이란 결심의 영역임에 틀림 없다.
명동의 허름한 고깃집에서, 혼자 사는 아저씨가 구워주는 고기를 먹고
소주잔을 몇 차례 비우며 주인 아저씨와 주고 받고 돌아오는 길.
명동으로 가는 차 안에서 택시 기사는
이 나라는 독재가 필요한 소인배들의 나라라고 말했다.
오랜 친구와 헤어져, 심하지 않은 취기를 극단으로 몰고 가는 버스를 타다 내려
기억이 포함하고 있을 과장을 눈감아준다면, 족히 십년쯤만일 토악질을 좁은 골목에서뱉어낸 후
집에 돌아와 제레미 아이언스의 사진을 보았다.
애정이란 결심의 영역임에 틀림 없다.
좋아하는 가수, 배우, 영화, 책, ...
이런 것들에 대한 답을 갖춰본 적 없는 내가, 언젠가부터
누가 물어도 거리낌 없이 '제레미 아이언스'라고 답했던 것도 일종의 결심의 결과였을 것이다.
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단지 내가 갖추고 있어야 할 답안의 하나였을 뿐이지만,
그래서 이를테면 로버트 레드포드의 깊은 미소에 매혹되면서도
언제나 정해진 답안처럼 내밀던 그 이름.
제레미 아이언스는 수트 차림에 담배를 피워문 맨발의 전신사진으로
유명한 패션 잡지의 표지를 장식하고 있었지만
그러나 그는 초라하게 속화된 그 무엇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를 표지모델로 내세운 남성잡지가
불과 한 페이지의 지면만을 그를 위해 할애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술 취한 나는 아무 비애감도 없이, 단지 그 한 페이지의 그의 사진에 몰두하며
열광하고, 찬탄하고, 그리고 이렇게 읊조리고 있는 것이다.
아, 제레미 아이언스.
데미지의 사운드트랙을 다시 듣고 싶다.
그 독특한 영국식 엑센트.
모든 감정을 무표정으로 표현해내는 그 깊이.
영원히 내가 사랑할 그 무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