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슈머
확실히 이전 시대와는다른 유형의 삶의 방식들이 지배하게 되었다.
'다른 유형의 삶의 방식들'에 대해,이름 붙이기 식으로 유형화하는 것은 너무 손쉽고 간편한 일이다. 물론 이런 식의 유형화된 이름들에 익숙해지는 것이, 흐름을 읽기에는 더 없이 좋은 방법이다. 패션잡지를 재미있게 읽게 되는 것도 그 때문. 미용실 패션잡지에서, 한국에 그 즈음갓 소개된 '보보스'란 단어를 접했던 것은 인상적인 기억.
여피 같은 단어는아주 오래된 것이고, 물론 꽤 지난 것이지만 여전히 효력을 발휘하는 것으로는 히키고모리, 프로슈머 같은 것들이 있겠다. 로하스족이라든지 패러사이트족, 혹은 딩크, 통크족도 있군. (그러고보니 오늘 아침 신문에서 딩크와 통크, 라는 칼럼(유레카 지면)을 읽었다; 여담이고,) 자꾸만 늘어가는 이 '족'들의 목록을 보노라면, 세계가 점점 더 부족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농담을 하고 싶어진다.
그 중,프로슈머 같은 개념은 아주 재미가 없다. 생산자이면서 소비자, 라는 이 단순한 조합의 (낡은) 신조어는 뭐랄까 더 중요한 측면을 놓치게 만드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진지하게 생각해보진 않았지만 그 느낌은 처음 그 단어를 접했던 오래 전부터 아주 강도 높은 것이었다. 특히 웹에 기반한,프로슈머라는 호명 혹은 정체성에 대해서는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그러기엔내가 너무 게으르지만.
사람들의 욕망에서, 사실 교환가치는 아주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시스템은 바로 그 교환가치에 근거해서만 존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그 자본주의의 시스템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교환가치를 벗어나는 욕망을 포기하거나, 자신의 욕망을 교환가치화하거나, 역설적이지만 (사회적 혹은 실질적) 생존 그 자체를 포기해야 한다. 사례로 얘기하자면 차례로 근대적 노동자, 낸시랭 부류(너무 극단적이지만), 히키고모리나 가난한 예술가나부랑자정도가 되겠지.
그런데 웹이라는 가상의 공간은, 누구나가 그 모두의 범주를 넘나드는 존재로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준다.예를 들자면, 나인 투 식스의 (사실 그보다 대개는 훨씬 길다) 근대적 노동을 바치는 사람들도 자기 존재의 욕망을 완전히 좌절시키지 않고 좀 다른 방식으로 해소할 수가 있는 것이다. 자기의 욕망을 찾아나설 수 있고, 그것을 표현할 수 있으며, 심지어 미지의 타인들과 연계되어 그것을 향유할 수 있다. 서핑, 블로깅, 네트워킹 같은 방식들로.
그리하여, 처음에 많은 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했던, 웹에서 이루어지는 기이한 자발적 헌신 같은 것들은 사실 근대적 노동이 소외시키는 인간 존재의 자연적 욕망에 부합하는 것이다.보상이 없이 이루어지는 파일의 공유, 컨텐츠의 생산, 자발적 유통 같은 것들이 초기에는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일부 부류를 당혹케 하나, 바로 그런 것들이 인간의 자연적 욕망이란 것이다. p2p에 대한 법적 제재는 그러므로 완전히 코미디에 가까운 것이다. 기술적으로도 가능하고 인간의 자연적 욕망에 부합할 뿐 아니라 아무 비용도 필요치 않은 과정을 오직 교환가치의 수호를 위해 법으로 금하다니!
물론 웹은 여러 가지를 왜곡시키기도 한다. 심지어 욕망 자체가 왜곡되어 있지 않은가. 욕망을 구조화하는 시스템, 이를테면 컨텐츠를 구조화하는 플랫폼(이라고 하면 되나? 그쪽 언어를 잘 모르니;;)은, 마치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듯 욕망을 생산해낸다.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자연의 일부인 인간의 본능적 욕망이 웹과 결합됨으로써, 욕망의 진열, 관음증과 노출증, 모종의 자기 전시가 시대의 트렌드가 된다. 조회수나 리플수가 이것을 양화시킨다. 그리고 생산자이면서 동시에 소비자인 프로슈머들이 알게 모르게, 자본이 이것을 교환가치로 환산해낸다.
프로슈머라는 말은 이 모든 스토리들을 단지 생산자와 소비자의 결합이라는 단순한 조합의 도식으로 지워버린다. 게다가 이것이 마치 매우 새로운 현상인 것처럼 (매우 새로운 욕망에 기반한 것처럼)의미화한다. 프로슈머라는 단어가 있기 훨씬 전부터 인간은 대개생산과 소비의 동시적 주체를 욕망해왔다. 그리하여 이 죄 없는 신조어를 탓할 일은 아니지만, 이 말 하나를 사용함으로써 지워지는 더욱 중요하고 흥미로운 부분들을 생각해보고 싶다는 것이다. 근대 자본주의가 이 세계를 여러 파편들로 조각내버렸을 뿐, 그 조각난 세계를 다시 퍼즐처럼 맞춰가는 일은 그 자체로 자연스러운 것이다.
공연히 떠들고 나서 보니뻔한 얘기만 썼군. 원래 생각해보려던 건 이게 아니었는데,
아무튼. 네이버 동영상 서비스를 실수로-_- 클릭했다가, 초등학생 밴드의 연주장면을 보고 흥겨워하다가는, 정말 너무 사적인 동영상이 업로드된 것을 보며, (내용을 차마 말 못하겠다) 혼자 조금 웃다 끄적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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