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데렐라맨

간만에, 정말 아주 간만에,
꽉 짜여진 드라마로 승부하는 영화 한편을 보다.
권투는 좋아하지만 권투영화는 좋아하지 않는,
날몸뚱아리로 겨루는 경기에 매력을 느끼지만
그렇고 그런 상처 많은 밑바닥 인생의 <남자>들이
마침내 그 상처를 권투로 극복한다는 식의 영화에는
도무지 구미가 당기지 않는 나로서는
어차피 뻔한 영화일 거란 생각을 떨칠 수 없었으나
간만에 드라마가 있는 영화, 라는 노군의 이야기에
별 기대 없이 추석연휴의 심야극장을 찾았다. 그런데...
이걸 뭐라고 말해야 하나.
사각의 링이(정말 진부한 표현이지만)
절벽 끝에 선 남자들의 상처 많은 삶과 분리되어
일종의 무대장치와도 같이 느껴지게 만드는 영화와 달리
신데렐라 맨이 선 링은
오히려 그의 <평범한> 삶의 일부이고
잔혹한 대공황 시기, 생존을 위해 마주해야 하는
공장노동자의 컨베이어벨트와 다르지 않더라는 것이다.
아니,
<주먹이 운다>의 남자들의 상처는
진부하고 진부해서 지루하기까지 한데
<신데렐라맨>의 삶에는
온통 몰입하지 않을 수가 없더라는 것이다.
대공황 시기에 대한 사실적인 재현,
혹한의 추위에 전기가 끊긴 반지하 살이의 가족,
후버빌의 시위와 웅성거림, 죽어서도 가난한 자들의 합장,
<모던타임즈>에 등장하던 인력시장의 풍경.
영화의 드라마가 그 배경에
완전히 녹아들어가는 영화.
미디어가 만들어낸 <신데렐라맨>이라는 호칭에
"girlish" 해서 마음에 든다며 웃던 르네 젤위거,
아무 비중 없이 처리되어도 상관 없었을
이 <복서>의 부인 역에 그녀가 있으니 새삼 색다른 느낌.
다른 한편으로는
영화의 클라이막스, 신데렐라맨을 응원하기 위해
푼돈을 모아 경기장을 찾은 그들, 경기장 주변에 운집한 그들,
술집에서 라디오 주변에 모여든 그들, 성당에 모여 기도하는 그들,
그 평범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괜히 눈물겨워서,
그런 그들에게 신데렐라맨이란 왠지
<몬스터볼>에 등장하는 흑인아이의 초콜릿처럼 느껴져서,
그래서 나도 그만 펑펑 울어버렸더라는.
<그래, 헐리웃, 이 정도는 해줘야지!>
영화관을 나서며 노군이 던진 한마디.
그래, 헐리웃,
이 정도는 해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