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남자

개봉하기 훨씬 전부터 보고 싶어했었지만
막상 보고 나니, 3% 이상이 부족한 느낌.
놀 줄 아는 왕과 놀 줄 모르는 대신들,
놀이를 즐기는 왕과 놀이를 두려워하는 대신들의 구도가 흥미로웠으나
그 구도는 이내 깨져버리고,
익숙하고 진부한, 광인에 가까운 연산의 이미지가 차용되는 가운데
군데 군데 등장하는 "인간" 연산에 대한 접근.
그러나, 이 인간적 해석도
mbc 옛 드라마 <조선왕조5백년>에 미치지 못한다.
녹수의 캐릭터 역시 산만.
(게다가 왕에게 "당신"이라 부르는 녹수의 생경한 대사들.
그것을 과연 "현대적" 해석이라 할 수 있을까?)
영화의 힘은 광대들에게서 나오고 있는데
광대들이 영화의 중심에 서기에는
왕 연산의 (실제) 드라마가 너무 압도적이다.
광대들을 전면에 내세우려면
왕은 굳이 연산이 아니었어야 했을 듯.
팩션의 유행 탓일까,
연산이라는 캐릭터에서 후광을 얻으려 했을까.
극적인 전개를 위해서는
연산이 광인이 되어야 하고
다른 접근을 위해서는
인간 연산이 되어야 하고
그런데 광대들과 겉돌지 않기 위해서는
모종의 관계들이 설정되어야만 하고
그 가운데 광대들의 드라마가 희극만이 아니기 위해서는
대신들의 음모나 연산의 광기가 또 필요해지고...
어쩌다보니 지나치게 인색한 평이 되어버렸군, 그러나,
아주 아주 오래전부터, 그러니까 영화에 데뷔하기도 전부터
혼자 주목해왔던 감우성이라는 배우의 연기를 즐길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이 민족을 타고 흘렀던 놀이들의 가락과 장단, 몸짓과 숨결,
그 풍부하고 아슬아슬한 면면들이 생생하여
영화의 흠결을 후한 맘으로 덮어버릴 수도 있을.
원작인 연극을 보고 싶단 생각도 들지만
유행에 휩쓸리고 싶진 않다는, 터무니 없는 반동 기질이...-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