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레탕티즘
몽상가들
에코echo
2006. 6. 7. 12:23
미국인 유학생 매튜에게 1968년의 프랑스 대학생 테오는
파월된 병사들은 모두 살육자들이라고 말한다.
그런 테오에게 매튜는
그들은 단지 국가의 징집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는 무력한 개인들이었으며
자신은 대학생이어서 운 좋게 징집되지 않았을 뿐이라고 답한다.
어떤 개인들을 가로지르는, 보다 큰 힘에 대해서,
이를테면 그 국가권력에 대해 불가항력인, 무수한, 평범한 개인들을 환기시킨다.
죽은 신이 다시 존재한다면, 그는 왼손잡이의 흑인일 거라며
에릭 크랩튼을 옹호하는 테오 앞에서 지미 핸드릭스를 추앙하던 매튜가,
베트남에서 병사들이 어떤 음악을 듣는지를 이야기하는 대목이다.
인간의 가장 절망적인 조건에 처한, 가장 평범한 개인들을 이야기하기 위해
베트남의 병사들을 이야기하는 순간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성난 시위대의 한복판에서 화염병을 만들고
그것을 전경들에게 투척하려는 테오에게
매튜는 달려가 또 외친다, 이것은 폭력이라고.
그리고 그 매튜에 맞서서
이것은 폭력이 아니라 이상이라고, 테오는 외친다.
그렇게 외친 후 전선으로 달려간다.
누가 옳은가.
누가 옳든,
초라하게 이름만 남은 퇴물 감독의 회고담이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1968년이 이 영화에서 과거가 아니라 완전한 현재진행형이었던 것처럼
이 영화를 단지 성장영화라거나 후일담이라고 보는 것은 아마 분명한 오독일 듯.
적어도 나는 그렇게 읽었다.
그리고
이런 한국영화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