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가는대로

서른 아홉

에코echo 2005. 12. 14. 02:40

지난 달이던가, 어느 늦은 밤

뜬금 없이 대학시절 선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주 절친했던 선배,

늦은 밤에 몇 시간이고 전화로 수다 나누던 선배.

 

나이 들어가면서

자연스레 연락도 뜸해졌던,

그래서 어쩌다 연락을 나누노라면

그 뜸한 주기가 어색해서

친밀하지 않았던 사람보다 왠지 더 어색함을 느끼게 되던.

 

아무튼 그 선배가, 지난 달,

밤 열두시가 넘은 시각이었나,

아무 일 없다는 듯 전화를 해서는

너는 왜 먼저 연락하는 법이 없냐, 식의

뜬금 없는 타박을 하더니만

작은 소리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한 달 있으면 형 서른 아홉이다."

 

 

탈도 많고 사연도 많은 대학생활을 접으며

마치 홧김에 하듯 취직을 해버리곤

아마 십년이 더 흐른 건가.

그 많던 집안 빚과 친형의 빚까지

몇 년 전엔가, 결국 다 갚아냈단 얘길 들었었다.

은행 빚만 남기고, 그 빚을 다 갚았단 얘길 들었을 때

나는 정말이지 사람이란 존재가

경이롭고 존경스러울 뿐이었다.

갚아낸 것이 어디 그냥 돈이었을까,

그 많은 젊은 날들을

오직 갚아내는 심정으로 살았을 것인데.

 

오늘 간만에 싸이월드에 들어가

오랜만에 이 선배의 미니홈피에 방문하니

서른 아홉을 이제 보름 남겨둔 이 사람,

아무 대안도 없이 직장을 그만뒀다고 한다.

십여년만의 최대의 모험, 이라고 적고는

단지 회사를 그만두는 게 최대의 모험이라니

인생이 초라하게 느껴진다고 덧붙인다.

 

 

나는 그가 스물 몇 살 때 꿈꾸던 것들,

좋아하던 것들, 바라던 것들,

몰입하던 것들, 경탄하던 것들을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이 사람의 인생이 그것들과

그래도 조금은 더 가까워지기를,

더 멀리 가지는 않기를,

주제 넘지 않을 만큼만 바라려고 한다.

 

그래서 그, 어이 없게 받아들여질 선택조차

그이다운 일이라고 생각하려고 한다, 그러니,

 

무조건 축복해,

무조건 형 편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