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아홉
지난 달이던가, 어느 늦은 밤
뜬금 없이 대학시절 선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주 절친했던 선배,
늦은 밤에 몇 시간이고 전화로 수다 나누던 선배.
나이 들어가면서
자연스레 연락도 뜸해졌던,
그래서 어쩌다 연락을 나누노라면
그 뜸한 주기가 어색해서
친밀하지 않았던 사람보다 왠지 더 어색함을 느끼게 되던.
아무튼 그 선배가, 지난 달,
밤 열두시가 넘은 시각이었나,
아무 일 없다는 듯 전화를 해서는
너는 왜 먼저 연락하는 법이 없냐, 식의
뜬금 없는 타박을 하더니만
작은 소리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한 달 있으면 형 서른 아홉이다."
탈도 많고 사연도 많은 대학생활을 접으며
마치 홧김에 하듯 취직을 해버리곤
아마 십년이 더 흐른 건가.
그 많던 집안 빚과 친형의 빚까지
몇 년 전엔가, 결국 다 갚아냈단 얘길 들었었다.
은행 빚만 남기고, 그 빚을 다 갚았단 얘길 들었을 때
나는 정말이지 사람이란 존재가
경이롭고 존경스러울 뿐이었다.
갚아낸 것이 어디 그냥 돈이었을까,
그 많은 젊은 날들을
오직 갚아내는 심정으로 살았을 것인데.
오늘 간만에 싸이월드에 들어가
오랜만에 이 선배의 미니홈피에 방문하니
서른 아홉을 이제 보름 남겨둔 이 사람,
아무 대안도 없이 직장을 그만뒀다고 한다.
십여년만의 최대의 모험, 이라고 적고는
단지 회사를 그만두는 게 최대의 모험이라니
인생이 초라하게 느껴진다고 덧붙인다.
나는 그가 스물 몇 살 때 꿈꾸던 것들,
좋아하던 것들, 바라던 것들,
몰입하던 것들, 경탄하던 것들을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이 사람의 인생이 그것들과
그래도 조금은 더 가까워지기를,
더 멀리 가지는 않기를,
주제 넘지 않을 만큼만 바라려고 한다.
그래서 그, 어이 없게 받아들여질 선택조차
그이다운 일이라고 생각하려고 한다, 그러니,
무조건 축복해,
무조건 형 편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