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가는대로
굿바이 백석
에코echo
2006. 3. 9. 10:02

처음 친구를 만나기 위해
일산에 갔던 날,
백석, 이라는 이름의 동네가 있다는 사실 하나에
매료되고 말았지,
언젠가는 꼭 여기서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했었지.
미지로 채워진 날들,
정말 채 일년도 되지 않아
백석, 이라는 이름의 동네에
살게 되었지.
아파트와 오피스텔이 뒤덮은
백석, 이라는 이름의 동네.
사람보다는 자동차를 위해 설계된,
시멘트와 콘크리트에 인공조경이 가미된
suburban들의 신도시 초입.
이곳에도 흰 바람벽은 있어
잠시 쓸쓸한 얼굴을 하고 있노라면
그 벽 위로 여러 글자들이 지나갔지.
<이 세상을 살어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 찬다>,
이렇게 중얼거릴라 치면
백석, 이라는 이름의 동네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자뭇 의미심장하게 느껴지기도 했지.
내가 딛고 다니던 콘크리트 바닥과 보도블럭들
하루에도 몇번을 오르내리던 낡은 엘리베이터
멍하니 앉아 쳐다보기도 했던 나이트클럽의 요란한 불빛
배고프고 입맛 없으면 찾아가곤 했던 2500원짜리 콩나물해장국집
대형할인마트에서 포스 찍어주던 파트타임 아줌마들
남방에 얼룩이 져도 미안하단 말 한마디 않던 세탁소 주인
가는 곳마다 쉽게 마주칠 수 있었던,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보이던 젊은 주부들
몸살로 앓아누우면 전복죽 사다 먹이던 동네친구
시간은 언제나 공간으로 매개되고
기억은 언제나 물질을 경유하고
그리하여 이렇게 뒤늦은 작별을 고할라치면
세면대에 내려앉던 물때처럼
생생하게 구체적인 사물들과 그만한 사람들이 떠올라
난 이제 도시로 왔다,
상상된 허구의 자연보다는
신도시의 가공된 자연보다는
태어나 자란 도시가 좋아.
도시의 한복판에서 가끔 기억나겠지.
안녕, 백석.
나의 한 시절들.
나의 한 뭉텅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