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바람벽

세계일주

에코echo 2006. 1. 26. 09:52



그대의 길은 잘못된 길이다
-世界一周를 하고 온 길은 잘못된 길이다
-世界一周를 떠났다는 것이 잘못된 길이다
너무나 먼 잘못된 길이다
너무나 많은 잘못된 나라다

그 罪過를 그 방대한 二十一개국의 地圖를
그대는 선물로 나에게 펼쳐보이지만
그대가 준 손수건의 暗示처럼
不吉한 눈물을 흘리게 했지만
그 분풀이로 어리석은 나는 술을 마시고
창문을 부수고 여편네를 때리고
地獄의 詩까지 썼지만

지금 나는 二十一개국의 정수리에
사랑의 깃발을 꽂는다
당신의 눈에도 보이도록 꽂는다
그대가 봉변을 당한 食人種의 나라에도
그대가 납치를 당할 뻔한 共産國家에도
보이도록

地獄의 詩를 쓰고 난 뒤에
그대의 출발이 잘못된 출발이었다고
알려주려고
모든 世界一周가 잘못된 출발이라고
알려주려고-

 

 

김수영, <세계일주>

(1967. 9. 26)

 

 

 

::

 

고등학생 아이들에게,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 서설을 읽고

김수영의 시집 중에서

오리엔탈리즘을 이야기할만한 시를 찾아오라고 말했다.

내심, 그 아이들이

"선생님, 못찾겠어요..." 라며

투정부릴 거라고 생각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면 짐짓 호통치는 체 하며 시 몇 개를 읽어주려 했다.

 

그런데 이 아이들,

<헬리콥터>와 <거대한 뿌리>만이 아니라

전혀 생각지 못한 시들을 찾아들고, 책갈피 접어 가져왔다,

그리고 상기된 음성으로 읽는다.

왜 그 시들에서 오리엔탈리즘을 떠올렸는지 수줍게 말한다.

 

아, 너희들은 정말 대단하구나.

대단한 아이들을 평범하게 만드는 게

역시 학교인 거구나.

 

한 아이가 <세계일주>를 읽을 무렵이 되어서는

사실은 조금

목 뒤가 서늘해졌다.

아이들 때문인지

<모든 세계일주가 잘못된 출발>이라는

김수영의 촌철 때문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