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한낮의 전화

에코echo 2005. 8. 12. 23:15

살아가다 보면

기억의 한 페이지에 완전히 각인되는,

그런 인상적인 사람을

몇 만나게 된다.

그이도 그러한 사람 중 하나였다.


처음 만난 건 어느 회의자리에서였겠지만

실제 그이와 인연을 갖게 된 계기는

뚜렷이 기억나지 않는다.

신경질적으로 들리는 쇳소리의 쉰 목소리와

눈의 흰자위를 드러내며 쉽게 흥분하는 그의 모습이

어떤 사람들에겐 썩 호감가지 않는 인상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가 그이에게 마음이 간 건

쉽게 흥분하고 쉽게 욕하고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거침 없이 내뱉는 그이가

실은 너무 순수해보였기 때문이었다.

머리 굴리고 눈치보는 것 싫어하는 그이의 태생적인 기질에

혹은 머리 굴릴 줄 모르고 눈치볼 줄 모르는 그 순진함에

참 정이 갔기 때문이었다.

그이가 애초에 나에게 마음을 주었던 것도

기가 센 여자라면 덮어놓고 좋아하고 보는 그

순진한 호의 때문이었을 것이다.

기가 센 여자라면 겉으로든 속으로든

일단 거리끼고 보는 사람들의 세상에서

나는 그이를 알게 되어 기뻤다, 그리고 감사했다.


처음의 인연이 시간을 더해 더 깊은 인연이 되어가면서

그이와 나 사이에는

서로에 대해 싫어하는 면면이나 좋아하는 면면들이

차곡차곡 쌓여갔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서로에 대한 정을 더욱 깊게 했을 것이다.

술이 취하면 대책 없이 나타나는 그의 주사에

나는 진력이 나서 대놓고 욕을 해대곤 했지만,

그러면 그이는 풀이 죽어

다시는 술을 먹지 않겠노라고

지켜지지 않을 다짐 따위를 해대곤 했지만,

그가 저지르는 엄청난 주사의 뒷감당을

곤혹을 치러가며 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실은 단 한 순간도 그이가 밉지 않았다.

술집에서 만난, 내가 다니는 대학의 교수에게

생면부지의 그가 물잔을 끼얹고

온 술집이 발칵 뒤집혀 몸싸움 직전까지 간 적도 있었지만

한참을 두고두고 그 일로 욕을 퍼부었으면서도

정말이지 단 한 순간도 그이가 밉지 않았다.


심지어 언젠가

술취한 그의 주사를 떠올리며 질색을 하던 누군가에게

그를 두고 명백한 반감을 표하던 누군가에게

<그사람, 내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야>라고 말한 적도 있었다.

나의 애정을 근거로 누군가를 변호하는 일이란

그 이전에도 없었고 그 이후로도 없었다.

애정이 판단의 근거가 되는 일이야말로

내가 결단코 가장 싫어하는 일 중 하나인데

그이에 대해서만큼은, 그게 아니고서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하지만 설명을 하고만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설명 대신에

고작 궁색한 변호를 담은 애정만을 들이댄 것이다.


그이가 고작해야

스무살 남짓의 무렵에

다니던 대학도 그만둔 채로

낯선 도시의 공장 노동자가 되었던 이여서가 아니다.

점심시간이면

공장 밖에 나와 혼자 철로를 보며 담배를 피웠는데

그 철로를 지나가는 기차 안의 사람들이

너무 부러웠노라고 그이는 말했다.

나는 그이의 그 솔직함이 좋았다.

자기를 둘러싼 그 어떤 경험과 범주에 대해서도

신화화하지 않는 그이가 좋았다.

"난 백선생 싫어",

내가 아는 한, 예컨대 이런 식의 말을 하는 사람은

주위에 그이와 나, 늘 둘 뿐이었다.

그게 참 경박한 태도와 언행이기도 하지만

그게 어떻게 그 사람을 말해주는지

애정을 갖고 알아봐주는 사람도

어쩌면 우리 둘 뿐이었을 것이다.


언젠가 그이가

대학시절, 수배 중인 여자친구를

어렵게 어렵게 접선해보니

머리는 파마를 하고 치마를 입고 화장한 얼굴로 나왔더라,

그런데 한눈에 그냥 알아보겠더라,

아마 형사들도 다 알아봤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낄낄 웃기 시작했을 때

그래서 그가 그 장면을 회상하며

낯설고 서글프나 우스꽝스런 그 장면에

웃음이 터져나오나보다 생각하며 지긋이 웃고 있었을 때

그런데 고개를 숙인 채로 들썩이는

그 어깨의 진동이

실은 웃음이 아니라 울음 때문인 것을 알아보고야 말았을 때

그렇게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는 사람인 것을

알아보고야 말았을 때

그때부터는 왠지

그이를 생각하면 코끝이 찡하다.


오늘 낮,

연락이 끊긴지 몇 년쯤 지난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도 없이

<이게 누구야!>라는 말로 전화를 받으니

수화기 저편에서 낯선 음성이 들린다.

핸드폰을 주웠는데, 주인을 찾아줘야 할 것 같았다고,

여기는 부안이라고.

뜬금 없이 전라북도 부안에서 걸려온 그 전화에

내가 어떻게 그이에게 핸드폰을 찾아줄까 고심하다

실은 그보다, 새삼스레

어떻게 그이와 연락이 닿을까 고심하다

무작정 검색사이트에 그의 이름을 입력하니

부안독립신문에서 그가

기자로 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 신문사로 전화를 거니

얼마 전 그곳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인연이 돌고 돌면

또 이렇게 신기한 일도 생기는가보지.

핸드폰을 주워든 사람은

왜 하필 그 많은 전화번호들 중

나에게 전화를 걸었을까.


다시 만나도

연락 없던 세월을 담은

반가운 인사 같은 건

둘 중 어느 하나도 건네지 않을 테지만

나는 역시 구박류의 핀잔을 보내고

그이는 역시 쉰 목소리로 투덜거리기 시작할 테지만

에누리 없이 무작정 하염 없이 반가워할 수 있는 사람-

그이는 평생 나에겐 그런 사람일 것이다.


너무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