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위던지기
20071014
에코echo
2007. 10. 14. 19:55

꿈 속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를 만났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꿈에서라도 만나보고 싶을 만큼 하루키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최근에 하루키의 작품을 읽은 적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상한 일이다. 다만 며칠 전, <해변의 카프카>를 대단한 작품이라고 말하던 지도교수가 생각나기는 했었다. 우연히 그 일이 생각나 의아하단 생각을 했었다. <해변의 카프카>가 그렇게 대단한 작품인가.
아니면 내심 하루키가 부러웠는지도 모른다. 질식할 것 같은 근래의 심경이 무의식 중에 하루키를 호출해냈는지도 모른다. 어떤 종류의 질식으로부터 자유로울 것 같은, 그러니까 자유롭게 쓰고 듣고 읽고 즐기고 쓸쓸해할 수 있는 어떤 삶의 방식, 그런 것에 대한 꺼지지 않는 원망이 그 한 체현자로 우연히 하루키를 불러냈는지도.
그도 아니면--사실 가장 그럴 듯한 것으로--그냥 개꿈이겠지. 아무튼 하루키를 만났는데, 그것은 어이 없게도 과의 콜로퀴엄 자리였다. 콜로퀴엄의 발표자로 한국에 온 하루키에게 나는 영어로 질문을 던져야 했다. 당신의 작품이 어쩌구 저쩌구 떠들어대다가, 마지막에 농담처럼 덧붙이고 싶어 시작한 말이, 십 수년 전 아마도 <씨네21>에서 읽었던 무라카미 류의 인터뷰 기사에 관한 것이었다.
무라카미 류는 일본 사회에서 희망을 찾는다면, 이라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었다: "늙은 세대가 모두 죽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희망은 없다" 라고. 나는 그 인터뷰 얘기를 꺼내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고 싶었는데, 어이 없게도 무라카미 류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꿈 속에서, 발표석에 앉은 하루키를 앞에 두고 무라카미 류의 이름을 생각해내느라 한참을 헤맸다. 어찌나 답답했는지, 결국은 반쯤 잠이 깨어 소파에 있던 최선생에게 기어가 눈 감은 채로 묻고 말았다: "그 사람 이름이 뭐더라? 그, 그, 그... <69> 쓴 사람." (하필 <69>라니.)
언젠가, 신촌 밤거리에서 아마도 2차 술집 찾다가, 바바리 코트 입고 역시 신촌 밤거리를 걷던 삐에르 부르디외를 마주치는 꿈을 꾼 적도 있다. 역시 꿈에서 만나고 싶을 만큼 좋아하는 건 아닌데, 그래도 죽은 그를 마주치니 꽤 반갑긴 했었다.
어제 <88만원 세대>를 읽어서 그랬나. 이 시대의 희망은, 늙은 세대가 모두 죽어버리는 것 뿐이라던 무라카미 류의 오래 전 얘기를, 하루키한테든 누구한테든 중얼거리고 싶어서 그랬나. 아니면 역시, 그저 개꿈이겠지.
꿈도 날씨도 마음도 모두 스산스럽다. 종일 넋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