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감기에 걸렸다.
고온의 한낮, 나는 팔이 긴 겉옷을 하나 더 걸치고
에어컨도 켜지 않은 채
차들이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내부순환도로에서
창문을 모두 닫은 차 안에 갇혀있었다.
오랜만에 K 선배와 만났다.
지난번 만났을 때 우리는 미국 동부의 어느 집에서 며칠동안 메뉴를 바꿔가며 바베큐를 즐겼었다.
그는 한국에 돌아와, 학교 끝난 아이의 숙제를 봐주며 집에서 지낸다고 했다.
한국에 돌아온 후 두번째 만남이었다.
정치에도 감정이 있다.
내가 느끼는 슬픔이 정치에 관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정치에도 감정이 있다는 것을,
그러니까 감정조차 다스리는 것이 정치라는 것을
2008년 1월에 깨달았었다.
그 겨울을 함께 보낸 J.
K와 이야기를 나누다 J를 만났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의 삶을 가장 바꾸어 놓는 것이 정치라고
그렇게 생각했다고
타인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살고 싶었다고
그런데 이제 자기 삶이라도 추스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농담과 진담을 황금비율로 섞을 줄 아는 그만의 화법으로
가볍게, 하지만 가볍지 않게.
사람들과 헤어져
가까스로 장을 보러 갔고
이내 현기증을 느끼며 귀가길에 올랐다.
내부순환도로는 끔찍할 정도로 정체가 심했다.
차들은 움직이지 않았고
나는
영원한 것이 과연 존재하는지
속으로 물었다.
차마 영원을 운운할 수는 없으되
강인하고, 쉽게 변하지 않으며,
오래도록 나에게 힘이 되어주리라 믿었던 많은 것들이
쇠약해져 가고 있다.
많은 것들이 소멸하고 있다.
소멸하거나 죽거나 병들거나
그렇게 변해가고 있다.
아니 이미 변해버렸다.
혹은
이제 내가 깨닫는 것이다.
무더위 속에서 한기를 느끼면서
온몸을 뒤덮는 통증에 집중하면서
나는 그 소멸에 대하여 생각하였다.
소멸하는 것들 앞에서 나는 속수무책이고
쇠약해져 가는 나의 힘들에 관하여 나는 무방비 상태이다.
다시 일으켜 세우기엔, 나는 너무나 지쳤다.
단지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