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전화통화. 쏘냐는 어색하게 안부를 묻고 전했다. 그제서야 듣게 된 아버지 병환 소식에 가슴이 철렁했다. 어색하고 건조한 그 목소리에 그 상심이 묻어있는 거라 생각했다. 아버지를 간병하는 그녀의 살뜰한 모습도 그렸다. 그런데 정작 쏘냐는 한참 뜸을 들이며 무언가를 망설이고 있었다. 그리고 망설임 끝에, 결국 하려던 말을 내뱉았다.
-나 있지, 배신감 들더라.
그리고 나서야 이제 좀 뭔가 털어놓을 수 있겠다는 듯, 이어지는 말들.
-너 결혼할 때도, 이렇게 배신감이 들지는 않았어. 그런데 이건 뭐야....
갑자기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마치 내가 계속해서 기다려왔던 말, 누군가에게 꼭 듣고 싶던 말이었다는 듯. 나는 환호성을 지르며 답했다.
-아, 고마워... 이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 있다니, 이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 있다니! 아, 내가 얼마나 좋은지 알아? 그리고 있지, 그게 무슨 마음인지 나는 알아. 나만 혼자 완전히 다른 세계로 가는 것 같은 거지?
그러자, 아, 나의 사랑하는 쏘냐는 말했다.
-그래, 너는 뭐야, 이제 정말 혼자 발에 땅을 디디는 거잖아.
언제였더라. 우리가 아비정전의 대사를 읊조리며, 발 없는 새를 운운하며 키득거리던 때. 그때로부터 십 오 년이 흘러, 어쩌다 미국땅에 흘러들어와 예기치 않은 일을 마주하게 된 나에게, 그녀는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있지, 우리 관계에 대해서 한참 생각해봤어. 그런데, 우리는 뭐랄까, 일상적인 관계가 아닌 것 같아.
-일상적인 관계?
-왜 있잖아.... 애기 옷 같은 거 사서 보내주고... 그러는 관계.
봇물처럼 웃음이 터져나왔다. 깔깔거리며, 마치 무릎이라도 칠 듯이 탄성을 지르며, 참 절묘한 답이라고 감탄도 하며 깔깔거리며 웃었다. 결혼한 후에도 만나면 밤을 지새우던 쏘냐. "들어가봐야 되는 거 아니야?"라고는 한번도 묻지 않던 쏘냐. 결혼에 대해서가 아니라 내가 만나 사랑하고 같이 사는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음미해주던 쏘냐. 한번도 그 둘을 혼동하지 않았던 쏘냐. "그녀가 그녀라는 이유로, 내가 나라는 이유로, 절대적 지지를 보낼 수 있다는 것이... 보석처럼 반짝"인다고 블로그에 적어주었던 쏘냐.
그 전화통화로부터 두 달 가까이 흘렀다. 예정일이 일주일 가까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는 아이를 두고, 내가 좋아하는 남미 출신의 간호사는 말했었다. 너의 딸은, 이 형편 없는 세상(nasty world)에 태어나고 싶지 않은 거야. 그 말이 너무 좋았다. 그러니까 뭐랄까, 발 없는 새 운운하던 엄마에 어울리는 딸이랄까. 쏘냐에게 해주면 좋아할 말이랄까.
태어나기 전부터 이 세상이 형편 없다고 간호사의 입을 빌어 전하던 아이는 지난 10월 17일에 태어났다.
이것은 배신일까? 정말 발에 땅을 디디는 일일까?
갑자기 내 앞에 쏟아지는 모성에 대한 찬미가 편치 않고, 아이의 국적을 두고 쏟아지는 이야기들은 그야말로 불편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쏘냐, 분명한 건, 이 아이는 태어나기도 전에 "배신"이나 "형편 없는 세상"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이 세상이 형편 없다고 여기게 될 것이 분명한 여자 아이 하나가 이 세상에 늘어났다는 것.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이 사랑스런 여자 아이는 또 어떻게 자라갈지, 지켜봐 줘 쏘냐.
-나 있지, 배신감 들더라.
그리고 나서야 이제 좀 뭔가 털어놓을 수 있겠다는 듯, 이어지는 말들.
-너 결혼할 때도, 이렇게 배신감이 들지는 않았어. 그런데 이건 뭐야....
갑자기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마치 내가 계속해서 기다려왔던 말, 누군가에게 꼭 듣고 싶던 말이었다는 듯. 나는 환호성을 지르며 답했다.
-아, 고마워... 이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 있다니, 이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 있다니! 아, 내가 얼마나 좋은지 알아? 그리고 있지, 그게 무슨 마음인지 나는 알아. 나만 혼자 완전히 다른 세계로 가는 것 같은 거지?
그러자, 아, 나의 사랑하는 쏘냐는 말했다.
-그래, 너는 뭐야, 이제 정말 혼자 발에 땅을 디디는 거잖아.
언제였더라. 우리가 아비정전의 대사를 읊조리며, 발 없는 새를 운운하며 키득거리던 때. 그때로부터 십 오 년이 흘러, 어쩌다 미국땅에 흘러들어와 예기치 않은 일을 마주하게 된 나에게, 그녀는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있지, 우리 관계에 대해서 한참 생각해봤어. 그런데, 우리는 뭐랄까, 일상적인 관계가 아닌 것 같아.
-일상적인 관계?
-왜 있잖아.... 애기 옷 같은 거 사서 보내주고... 그러는 관계.
봇물처럼 웃음이 터져나왔다. 깔깔거리며, 마치 무릎이라도 칠 듯이 탄성을 지르며, 참 절묘한 답이라고 감탄도 하며 깔깔거리며 웃었다. 결혼한 후에도 만나면 밤을 지새우던 쏘냐. "들어가봐야 되는 거 아니야?"라고는 한번도 묻지 않던 쏘냐. 결혼에 대해서가 아니라 내가 만나 사랑하고 같이 사는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음미해주던 쏘냐. 한번도 그 둘을 혼동하지 않았던 쏘냐. "그녀가 그녀라는 이유로, 내가 나라는 이유로, 절대적 지지를 보낼 수 있다는 것이... 보석처럼 반짝"인다고 블로그에 적어주었던 쏘냐.
그 전화통화로부터 두 달 가까이 흘렀다. 예정일이 일주일 가까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는 아이를 두고, 내가 좋아하는 남미 출신의 간호사는 말했었다. 너의 딸은, 이 형편 없는 세상(nasty world)에 태어나고 싶지 않은 거야. 그 말이 너무 좋았다. 그러니까 뭐랄까, 발 없는 새 운운하던 엄마에 어울리는 딸이랄까. 쏘냐에게 해주면 좋아할 말이랄까.
태어나기 전부터 이 세상이 형편 없다고 간호사의 입을 빌어 전하던 아이는 지난 10월 17일에 태어났다.
이것은 배신일까? 정말 발에 땅을 디디는 일일까?
갑자기 내 앞에 쏟아지는 모성에 대한 찬미가 편치 않고, 아이의 국적을 두고 쏟아지는 이야기들은 그야말로 불편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쏘냐, 분명한 건, 이 아이는 태어나기도 전에 "배신"이나 "형편 없는 세상"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이 세상이 형편 없다고 여기게 될 것이 분명한 여자 아이 하나가 이 세상에 늘어났다는 것.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이 사랑스런 여자 아이는 또 어떻게 자라갈지, 지켜봐 줘 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