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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레탕티즘

오시마 나기사 특별전


오시마 나기사 특별전 마지막 날. 한 감독의 작품을 연속적으로 보는 건 확실히 다른 방식으로 보는 것과 완전히 다른 경험인 것 같다. 감독특별전에 이따금 가긴 했지만, 이렇게 매일 두편씩 거의 빠짐 없이 본 적은 없다.

몇 편의 영화들은, 영화가 끝난 후 다음 작품을 보는 게 힘들 정도로 강렬했다. 자기 역사에 대한 혐오의 서사는 지독할 만큼 처절해서 숨이 막힐 지경이었고, 그 와중에 시도되는 온갖 전위적인 형식의 실험들은 탄성을 자아냈다. 서사가 아니라 형식으로 얼마나 (심지어 정치적인) 전복성을 표현할 수 있는지 말해주던 몇 편의 영화들.

한국에 오시마 나기사가 있었다면, 한국은 지금과는 다른 사회가 되어있었을지 모른다. 정치의 영역에서 도저히 파괴할 수 없는 것들을 예술은 파괴한다. 그의 영화들을 보면서 나는 내가 태어나 자란 나라를 여러 차례 슬프게 떠올렸다. 한국은 오래도록 오시마 나기사를 낳을 수 없는 사회였다. 

박찬욱이 멋을 덜 부렸으면 좋겠다. 그가 밀고 나갈 수 있는 곳까지 밀고 나갔으면 좋겠다. 봉준호가 (그는 본래 파괴적인 감독은 아니지만) 조금은 실험적인 영화들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몇 년 전까지, 동시대에 그런 감독들이 있어 행운이라고 생각하곤 했었는데, 그들이 좀 더 파괴적이었으면 좋겠다. 그들이 더 나이 들기 전에, 정치의 영역에서 파괴할 수 없는 것들을, 예술의 탈을 쓰고 파괴해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