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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위던지기

20081111

리시버를 샀다.

craigslist에서 찾아낸 중고 JVC 리시버를 옆 도시의 노부부에게서 30불에 샀다. 사실 이 리시버를 사기로 한 것은 이미 몇 주 전 일이다. 그동안 나는 바빴다. 지지난 주말에 버스를 타고 리시버가 있는 Alrigton으로 찾아간 적이 있는데, 그때 약속이 어긋나 리시버의 주인들과 연락이 닿지 않았었다. 오늘 아침 열한시 경 다시 찾아가기로 약속을 했는데, 어제 밤 늦게까지 책을 읽다가 잠들어 깨어났을 때는 이미 아침 열시가 넘어있었다. 나는 양치만 하고 세수도 하지 않은 채로 집을 나섰다. 리시버를 사기 위해 다른 도시로 간다. 다른 도시, 라고는 하지만 모두 작은 도시들이어서 버스로 삼십분이 채 안 걸린다.

버스 안에서 나는 어제 읽다 잠든 <나의 미카엘>을 읽었다. 이곳에서 만난 친구가 수줍게, 보물처럼 내민 책이었다. 꼭 내가 읽어보길 바란다고 했다. 자기가 너무 좋아하는 소설이라 여러 번 읽었다고, 그래서 낡고 지저분한데 괜찮겠냐고 물었었다. 낯선 도시로 가는 버스 안에서 나는 생일선물로 받은 아이팟으로 음악을 들으며 나의 미카엘을 읽었다. 초행이 아니라 괜찮다고 생각하면서. 처음 알링턴으로 가는 버스를 탔던 날은 창밖의 풍경에 온통 신경을 빼앗겼었다. 조금씩 다른 경치, 어딘가 조금씩 달라지는 풍경들. 그런데 두번째의 알링턴행 버스 안에서 나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 속해있었다. 나는 예루살렘의 비오는 거리에 백현진의 솔로앨범을 들으며 앉아있었다.

내 앞좌석에는 무슨 음식 포장 같은 것을 조심스럽게 무릎에 올려놓은 젊은 흑인남자가 앉아있었다. 버스에 올라탔을 때부터 나는 그 남자를 보았는데, 딱 하나 남아있는, 두 자리가 온전히 비어있는 그의 뒷 좌석으로 가 나의 미카엘을 펼쳐들고 읽기 시작했던 것이다. 자리에 앉자마자 어디선가 알 수 없는 냄새를 맡았는데 그것은 마늘 냄새 같기도 했고 홈리스의 냄새 같기도 했다. 나는 내 자신이 냄새에 매우 민감한 사람이라는 것을 상기했다. 한국인에게서 이런 마늘냄새가 날까? 내 앞에 앉은 남자는 홈리스일까? 자리를 옮길까? 그러면 이 남자는 불쾌할까? 그렇지만 견딜 수 없는 냄새라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나는 몇번인가 버스 안에서 홈리스와 가까운 자리에 앉은 적이 있다. 그럴 때면 아주 어린 시절, 쓰레기차 앞을 지날 때 일하는 아저씨들이 다 볼 수 있을 만큼 코를 막고 인상을 찌푸리면서 빠른 걸음으로 지나가던 아이들을 속으로 내가 얼마나 경멸했는지 생각하곤 했다. 나는 숨을 참고, 숨을 참고 있다는 사실이 들통나지 않도록, 그리고 마치 쓰레기차는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듯이, 행여 내 걸음이 빨라질까봐 주의하면서 느리고 무표정하게 걸었었다. 아무튼 내 앞자리의 남자에게선 분명히 마늘냄새 같은 것이 나고 있었다. 그의 뒷모습은 단정해보였다.

나는 내려야 할 정류장을 지나쳤다. 겨우 두번째 찾아가는 행선지를 두고, 초행길이 아니라고 방관했던 스스로를 속으로 힐난했다. 나의 미카엘을 읽으며 예루살렘의 황량한 거리에 있던 내가 알링턴행 버스 안으로 다시 돌아와 앉은 것은 앞에 앉은 남자에 대해 생각했던 순간들이 전부였다. 그가 갑자기 일어서 다음 정류장에 내릴 태세를 하고 있을 때 나는 거의 처음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때 버스 안에 타고 있던 흑인 세 명이 불현듯 어디선가 일어나 버스 뒷문쪽으로 다가섰다. 마치 버스 안의 흑인들이 모두 한 정류장에서 내리는 것 같았다. 흑인들이 모여사는 동네인가보네, 창밖으로 눈길을 던져 동네의 특징을 찾아보려 했지만 실패했다. 버스에서 내려 잠시 길거리에 멈춰 선, 내 앞자리에 앉아있던 남자의 얼굴을 그때 처음 보았다. 무슨 음식 포장 같은 것을 아주 조심스럽게 잡고 있는 손. 눈동자가 정말 선하게 생긴 사람이었다. 그제서야 나는 그 마늘 냄새가 저 음식으로부터 왔을 거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는 마치 세 살 쯤의 어린 아들을 위해 정성스럽게 음식을 들고 가는 젊은 아버지처럼 보였다. 일순간 나는 그와 헤어지게 된 것이 조금 서운해졌다. 마음 속으로 조용히 축복을 빌었다.

열 다섯 살쯤부터 나는 이따금 버스를 탔다. 어딘가의 낯선 종점에 도달한 채 나를 내려놓고야 마는 버스가 아니라, 낯선 길들을 지나 어느 지점인가를 돌아서 다시 나의 동네로 돌아오는 버스들. 주로 탔던 건 여의도행 버스였다. 어느 비오는 저녁, 나는 여의도행 버스를 타고 낯선 길들을 지나 여의도를 돌아 다시 나의 동네로 돌아왔다. 검고 우중충한 골목들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때 세계는 말 없고 고요한, 우울하지만 견뎌내야만 하는 어떤 신비에 둘러싸여 있었다. 저 수십개의 작은 불켜진 창들 너머에 어떤 알 수 없는 인생들이 무수히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잊혀지지 않는, 두렵고 절망적이며 신비로운 느낌이었다. 단 하나뿐인 인생들이 무수하게, 미지의, 무명의 상태로 저 창들 너머에서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끈질기게. 혼자 버스를 타고 낯선 거리들을 지날 때, 나는 이따금 열 다섯 살 무렵의 내가 버스를 타고 눈길을 던지던 그 골목들을 떠올린다. 그 신비감은 여전히 나를 사로잡고, 그리고 나를 아주 따뜻하고 우울하게 만든다. 나는 버스를 타고 낯선 길들을 지나는 것을 좋아한다.

내려야 할 정류장을 지나쳤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나는 잠시 망설이느라 또 몇 개의 정류장을 더 지나쳤고, 그제야 굳은 결심을 한듯 낯선 정류장에 단호하게 내렸다. 마침 건너 편 정류장에 같은 버스가 도착하고 있었다. 오늘은 운이 좋구나, 속으로 생각하며 빠르게 걸어 그 버스에 올라탔다. 지난번 알링턴에 왔을 때는 버스를 삼십분도 넘게 기다려야 했던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작 한번 와본 적 있을 뿐인데도 익숙하게 느껴지는 거리에 내렸다. JVC 리시버의 주인은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그의 집에 도착했을 때, 나이 든 백인 할아버지는 자신의 차고로 나를 안내했고, 그곳에는 성능을 확인시켜주기 위해 전원과 스피커에 연결해둔 리시버가 있었다. 나는 마치 운명처럼 느껴지는 강아지를 만난 듯한 반가움에 빠졌다. 차고 안에는 많은 일렉 기타들과 오디오 기계들이 있었다. 나는 문득 그 나이 든 백인 할아버지의 젊은 시절이 궁금해졌다. 아주 커다란 백을 들고 올 줄 알았는데, 그가 처음 인사를 건네며 그렇게 말했을 때는 그저 좀 색다른 인사려니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가 지갑을 꺼내 삼십 불을 건네는 나에게 어디 사는지, 어떻게 들고 갈 것인지를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을 즈음에야 그 리시버가 꽤 무거울 거란 사실을 깨달았다. 

리시버는 참혹할 정도로 무거웠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정답게 인사를 하고 돌아섰지만, 다시 또 이 무거운 물건을 들고 아파트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에 가벼운 절망감을 느꼈다. 새로운 도시에 도착해서 나는 정말 너무 여러 번 물건의 무게에 몸서리를 쳤다. 텔레비전과 전자렌지 같은 것들을 나는 모두 내 손으로 직접 옮겼다. 나에게는 차가 없다. 음식재료를 사러 가는 것도 불편하다. 아무튼 리시버의 무게는 다시 한번 끝이 보이지 않는, 공포나 절망감이라는 단어에는 어울리지 않지만 사실 그와 근사한 감정을 안겨주었다. 오래 걸어 버스정류장에 다다를 무렵, 내가 타야 할 버스가 도착하고 있었다. 오늘은 운이 좋구나, 속으로 생각하며 빠르게 걸어 그 버스에 올라탔다. 지난번 알링턴에 왔을 때는 버스를 삼십분도 넘게 기다려야 했던 것이다. 이번에는 내려야 할 정류장을 염두에 둘 필요도 없어. 나는 불과 얼마 전까지도 나의 세계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길들과 가게들을 이제 나의 동네로 부르고 있다. 버스는 나의 동네로 나를 안전하게 데려다주었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몇 차례인가 나는 휘청거리기도 했고, 후들거리는 팔을 수습하기 위해 리시버를 땅에 내려놓기도 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도저히 한번에 집까지 들고 갈 수는 없어. 가는 길에 중국집에 들러 완탕수프를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리시버를 사서 하버드스퀘어에 도착하면, 일본식당에 가서 호사스럽게 10불이 넘는 우동을 먹겠다고 결심해두었었다. 그런데 리시버가 너무 무거웠다. 나는 최단거리를 택해야 했다. 그래도 무언가 국물이 먹고 싶어 완탕수프로 거의 마음을 정한 상태였다. 그러나 나는 리시버의 무게에 온통 정신이 팔려 그 중국집을 지나쳤다. 집으로 가는 길에는 던킨도너츠와 지하의 작은 카페가 있다. 둘 중 어딘가에 들러 내 팔을 쉬게하리라고 다짐에 다짐을 거듭했다. 던킨도너츠 앞에서 드나드는 사람들에게 컵을 들고 문을 열어주는, 아주 정중하고 친절하게 구걸을 하는 말쑥한 남자가 멀리서부터 나를 보고는 놀란 표정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그렇게 무거운 걸 어떻게 혼자 들고 걸어요? 내가 도와줄게요. 집까지 들어줄게요. 나는 웃으면서 사양했다. 괜찮아요, 고마워요. 그리고 마치 하나도 무겁지 않다는 듯한 표정으로 던킨도너츠를 지나쳤다. 이제 지하의 작은 카페가 남았다.

나는 그 카페를 좋아한다. 처음엔 이유도 없이 고급스러운 카페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작고 남루하고 정다운 곳이다. 중동이나 남미에서 왔을 것 같은 배 나온 아저씨가 주문도 받고 서빙도 하고 계산도 한다. 그가 주인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중동에서 왔는지, 남미에서 왔는지, 아니면 미국에서 태어났는지 그것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나는 그 아저씨가 좋고, 저번 할로윈에 잠깐 커피를 마시러 들어갔을 때에는 혼자 텅빈 카페를 지키고 있던 아저씨에게 정다운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참혹할 정도로 무거운 리시버를 들고 힘겹게 들어선 카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나는 또띠야와 샐러드, 커피를 주문하고 나의 미카엘을 읽었다. 다시 예루살렘의 거리로 갔다. 그리고 이따금 캠브릿지의 작은 카페로 돌아와 커피를 마셨다.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마음 깊이 실감하면서. 지구가 평평하다면 나는 단지 아주 먼 곳으로 왔을 뿐이겠지만, 지구는 둥글기 때문에, 나는 내가 속해있던 세계와 반대편의 세계로 와서 살고 있는 것이다. 구면으로 된 세계. 세계의 정반대쪽에는 나의 연인이 살고 있다.

나의 미카엘을 읽으면서 나는 여러 번 나의 연인을 떠올렸다. 그리고 지하의 그 작은 카페에서, 이천사년의 어느 겨울과 봄 그와 나누던 대화들을 생각하면서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고, 정확히 두 차례, 갑작스럽게 눈물을 쏟아낼 지경에 이르다 가까스로 무겁게 침을 삼키듯 눈물을 삼켰다. 그는 마치 오래 전에 헤어져 찬란하고 서글픈 순간들만 남긴 사람처럼 되살아났다. 커피를 마시기 위해 잔을 들때마다 여전히 팔에 통증을 느꼈고, 그래서 나는 오래도록 천천히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으며 예루살렘의 미카엘을 읽었고, 그러다 문득 세계의 반대편에서 오래 전에 나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떠올리며 눈물을 터뜨릴 뻔하다 간신히 그것을 견뎠다. 그리고 오늘은 일기를 쓰겠다고 마음먹었다. 아주 느리고 긴 일기를 쓰겠다고. 그리고 말과 글로 이원화된 세계에 대한 논의들을 떠올리면서, 나에게 언제나 더 핵심적이고 더 절대적인 것은 글이라고, 왜냐하면 글은 말과 달리 '물질'이기 때문이라고 속으로 되뇌었다. 그리고 몇 달 전, 내가 태어난 도시를 떠날 무렵 나를 환송해주던 선배가, 꾸준히 글을 쓰라고 당부하던 것을 기억했다. 기록하지 않으면 잊혀진다고. 나는 아주 느리고 긴 일기를 쓰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아주 느리고 긴 점심을 먹었다.

커피잔을 들 때 느껴지는 팔의 통증이 줄어들 무렵, 나는 중동이나 남미에서 왔을 것 같은 배 나온 아저씨가 손님을 더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갑자기 다급히 일어나 계산을 치르고 카페를 나섰다. 오늘은 휴일이고, 그래서인지 작은 카페는 손님들로 가득차 있었다. 빈 테이블이 없었고 아저씨는 분주했다. 리시버의 참혹한 무게가 다시 시작되었다. 그랬다, '무게'가 다시 '시작'되었다. 그러나 잠깐의 휴식으로 나는 기운을 회복했다. 계속 길을 걸었다. 팔의 각도에 신경을 쓰면서. 아이팟에서는 레오나르도 코헨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집으로 가는 길에 있는 벤치의 위치들을 마음 속으로 그리며, 어디 어디에서 쉴 것인지를 결정하며 걸었다. 그럴 무렵 차를 운전하고 있던 어떤 아저씨가 내 앞길에 차를 세워 나에게 무언가 말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이어폰을 끼고 있었고 양팔은 움직일 수도 없는 채였다. 미안하지만 당신 말을 듣지 못해요, 내가 가늠되지 않는 볼륨으로 말했고 그는 나를 기다리겠다는 손짓을 했다. 그리고 그 앞에 다다르자 그는 이제 나에게 들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무거운 것을 들고 걷다니, 그 무거운 오디오를 어떻게 혼자 들고 걸어요? 내가 도와줄게요. 나는 이 근처에 살아요. 차에 타세요, 태워다 줄게요. 나는 구원받은 사람처럼 기뻤다. 

친절한 백인 아저씨는 상냥하게 대화를 건넸다. 나의 전공을 묻더니 자기와 비슷한 분야라면서, 자신의 박사학위는 심리학이었다고 말했다. 그 순간 나는 이 도시의 높은 평균학력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사회학에 대해 조금 알고 있냐고 그가 묻기에 나는 조금 난처한 기분으로 "조금요"라고 답했다. 그는 한눈에 봐도 배려심이 많고 친절하고 또 올바른 사람이었다. 그가 어빙 고프만에 대해 이야기했다. fascinating하다고, 정말 패셔내이팅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자신은 또한 영화감독이라고 말했다. 영화감독이요? 와, 멋진데요. 어떤 영화요? 내가 묻자 그는 아방가르드 계열의 영화들이라고 말했다. 이 우연한 만남이 가져다주는 신기한 인연에 나는 즐거웠다. 마침 내일 저녁, 브래틀 극장에서 자신의 영화를 상영한다고 말했다. 시간이 있다면 와요, 영화가 끝나면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텐데, 당신이 온다면 정말 환영이에요. 그리고 나의 이름을 기억하기 위해서 세번째로 나의 이름을 물었다. 나는 정말 그 아저씨의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는 일이 실제로 벌어진다면 얼마나 어색하고 멋적을까 상상해보았다.

우연히 만난, 화이트라는 성을 가진 아저씨 덕분에 나는 정말 예기치 않게 구원을 받은 사람처럼 편안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결심했던 대로 길고 지나치게 상세한 일기를 쓴다. 그럼으로써 이천팔년의 십일월십일일은 물질화되었다. 이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사이 사방은 어두워졌고, 완전히 밤의 세계로 뒤바뀌었다. 그러나 아직 오후 다섯 시도 되지 았았다. 나는 그 길고 지루하다는, 지독하게 춥고 아름답다는 이 도시의 겨울을 기다리고 있다. 기다리고 있는 나에게, 오후 네시면 밤이 된다는 그 겨울이 이렇게 오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제 곧 책상에서 일어나 리시버를 정성스럽게 닦을 것이다. 그리고 이 집안에는 처음으로 음악소리가 퍼질 것이다. 창밖으로 보스턴의 다운타운이 보이는 아파트 책상에 앉아, 이렇게 나는 일기를 쓴다. 노트북의 배터리가 거의 다 닳았고, 나는 전원 코드를 가지고 있지 않다. 소설을 쓰고 싶다. 나는 이제 정말 예수보다 더 오래 산 사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