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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위던지기

20060217(2)


몸살이 도지는 것이 두려워 수영을 가지 않았다. 무언가를 거르게 되면, 이상하게도 그만큼의 시간을 버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리게 된다. 허리가 아파서 쇼파와 침대와 의자를 오가며 랩탑으로 온갖 잡다한 일들을 처리하고, 여러 종류의 글을 읽었다. 빨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이 글을 다 쓰고 나서야 시작하게 될 것 같다.
 
어제 꾼 꿈은 명확히 기억나지도 않고 강렬한 느낌을 준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개운치 않은 기운을 남긴다. 게다가 "내가 없는 윤회," 라고 모로 누워 중얼거리며 행복해하던 기억이 꿈인지 생시인지 확실치 않다. 내가 없는 윤회, 라고 중얼거릴 때, 나는 분명히 지난해 몇달동안 나를 사로잡았던 불교적 사유를 행복하게 곱씹는 중이었다. 정승석과 윤호진의 책을 떠올렸고, 정성스럽게 읽었던 아함경이나 미란타왕문경 같은 경전들을 생각했다. ("내가 없는 윤회"가 얼마나 해방적인지를, 언어로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설명"이란 매우 무능하고 무력한 방식이다. 그러나 포기할 수는 없다.) 아무튼 이것이 꿈이었다면 신기한 일이다.
 
사실 이런 이야기를 적으려던 것은 아니다. 여러 종류의 글을 읽으며 오후를 보내고 난 후, 일어서서 빨래를 시작하려다 문득, 새삼스러울 것 없는 가벼운, 그러나 짧고 경쾌한 섬광 같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것은 크게 세가지의 생각으로 나뉜다.
 
첫째,
나는 내가 정말 살고 싶었던 삶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았다. 짧고 경쾌하게 생각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스물아홉살이었을 때,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처절하고 혹독하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의 감정에 휩싸여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서른이 되어 나는 자연스럽게 그런 종류의 감정들로부터 자유롭게 되었다. 하지만 그 문제가 언제나 중요하다는 사실은 계속해서 상기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 문제를 짧게라도 정리해보기로 했다.
조금 추상적으로 말한다면, 지금의 나에게는 대략 다섯가지쯤의 요소들이 중요하게 떠오른다.
1. 생각할 시간을 확보하며 사는 것
2. 경제적으로 여유롭게 사는 것
3. 성취감을 주는 직업을 가지는 것
4. 지금까지의 삶이 자원이 되는 방향으로 사는 것
5. 스스로에게 의미있는 것을 생산하며 사는 것.
 
그런데 이 네가지는 종종 서로 충돌하는 듯 하다. 가령 4의 경우를 고려한다면, 지금 당장 논문을 준비해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의 시점에서, 도무지 의미있는 사회학 논문이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단편소설을 쓰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다. 4와 3을 조합하는 방향도 생각해볼 수 있지만 아무래도 3이야말로 다른 것에 비한다면 가장 후순위의 요소이다. 2와 관련해서는, 부자로 살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궁핍보다는 여유가 나을 것이고, 무엇보다 중요하게는 경제적으로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 문제는 언제나 다른 요소들을 상당 부분 포기하게 만든다. 5가 나머지 대부분의 요소들에 대립하는 것과 비슷하다.
아무튼 조금 더 생각해야겠다. 문제는 생각만 너무 많아서는 안된다는 것.
 
 
둘째,
일기를 쓸 때는 날적이나 블로그 체의 글을 가급적 쓰지 않아야겠다고 불현듯 결심했다. 즉, 행을 나누지 않고 문단을 구성해서 글을 써야겠다는 것이다. 십대 시절에 일기를 쓸 때도 사실상 행을 나누어 쓰는 습관이 있었는데,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가독성을 높여주기는 하지만 글쓰기에 있어서는 꼭 좋은 습관이라고 할 수 없다. 읽히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기록하기 위해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가독성을 위해서 특정한 방식으로 글을 썼던 건 아니지만, 의식적으로 바꿔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문체에 대해 조금 생각해보기도 했는데, 한동안 문체에 대해서는 굳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문단을 구성해서 쓰는 글은 문체와 관련해서도 좋은 일임에 틀림 없다. 이십대 초반에는 한 사람이 하나의 문체를 갖는 것에 대해 조금은 냉소적인 태도를 가졌었다. 나 자신의 성격과 취향이 다면적이듯, 단 하나의 문체를 갖는 것은 그리 꿈꿀 만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성격과 취향도 결국 선택해서 결정해버리는 일일 수 있듯이 문체도 많은 이유에서 결국 결정하는 것이 될 테다. 아무튼 이것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자.
 
 
셋째,
(어떤 종류의 의무와도 무관한, 순전히 개인적인) 글 읽기에 있어서 계획을 세워보기로 했다. 느슨하게나마 계획을 세우고 글을 읽는 일은 조금은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하고, 여러 면에서 분방한 편인 나 같은 사람에게는 약이 되는 습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분간은 니체와 폴 오스터를 읽겠다. 2월에는 이사를 비롯해서 여러 일이 많으니, 얼만큼의 계획을 세워두어야 할지 모르겠다. 일단 2월 안에 니체와 폴 오스터를 읽은 후, 그 다음을 좀 더 생각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