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구월이다. 물처럼 흘러가는 시간들.
이방의 도시에 와서 경험하고 보고 느끼는 것들을 착실히 기록해야겠다고 다짐했었으나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절실한 경험과 관찰과 생각이라 해도 기록하지 않으면 보존되지 않는다. 각인하기 위한, 혹은 그 어느 시점에선가 상기하기 위한 노력.
오늘은 패컬티들만 출입할 수 있다는 faculty club에서 일종의 리셉션이 있었다. faculty club의 실내는 구조와 가구와 인테리어와 serve하는 사람들의 태도까지, 그야말로 미국 상류층 엘리트들의 격식을 느끼게 했다. 어제는 가족들까지 전부 동반해서 미리 예약된 보스턴 시내 duck tour를 하고 legal seafood에서 가재요리로 식사를 했었다. 한편으로는 참 융숭한 대접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 많은 펀딩이 어떻게 가능한가 생각해보았다. 이게 다 학생들의 비싼 등록금 덕이려니 하고 결론내렸었는데 오늘 문득 떠올려보니 연구소는 재정적으로 하버드로부터 독립되어 있다. 정확한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visiting scholar 한 명을 위해 연구소에서 지출하는 재정이 1년에 10만불이라는 이야기를 어제 얼핏 들었다. 왜, 어떻게, 이런 펀딩이 이루어질까.
구조와 가구와 인테리어 모두가 미국 상류층 엘리트들의 격식을 느끼게 하는 faculty club에 들어서자, 나는 갑자기 이 모든 것들이 영화 스크린에서 툭 튀어나온 세트장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 상류층 엘리트들의 격식이라는 게 그만큼 이질적으로 느껴졌거나 혹은 내가 너무나 관찰자적이었던 것일 테다. 아무튼 왠지 그리 환호하고 싶지 않아서, 나는 공연히 화장실로 들어가 이미 깨끗한 손을 다시 씻었다. 잠시 후, 예약된 룸으로 들어가자 이미 셋팅된 원형 테이블이 여러 개 있었고, 각 테이블에는 자리마다 인쇄된 이름들이 놓여있어 참석자들의 좌석이 모두 사전에 배치되었음을 알렸다. 사람들이 모두 두리번거리며 본인의 이름을 찾기 위해 테이블 사이를 오갔고, 나는 모든 테이블들을 다 돌아다닌 후에야 내 자리가 엘리자베스 페리의 바로 옆 자리인 것을 알게 되었다.
엘리자베스 페리는, 내가 석사 2학기 때 읽었던 Shanghai on Strike의 저자다. 중국에서의 노동자들의 파업을 다룬 책이었는데 무척 인상 깊어서, 그가 대체 어디서 뭐하는 사람인가를 찾아보던 기억도 생생하다. 석사논문을 쓸 때 그 책이 내 논문의 중요한 reference 중 하나였음도 물론이다. 어떤 면에서 나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얼떨결에 visiting fellow를 지원했을 땐, 인터뷰하러 온 패컬티가 우연히도 민족주의를 연구한 인류학과 교수여서 어정쩡하게 민족주의 얘기를 얼버무렸던 proposal 덕에 민족주의 얘기를 한참 나눴었다. fellowship을 받게 됐다는 연락을 받고는 기쁘다기보다 의아하다는 생각이 앞설 무렵, 마침 또 그즈음에 연구소 소장으로 엘리자베스 페리가 새로 취임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엘리자베스 페리를 드디어 오늘 처음 만나게 되었다. 중국에서 컨퍼런스가 있었고, 캠브릿지에 어제 도착했노라고 그가 말했다. 처음 페리를 알아보았을 때 그와 인사라도 나누면 좋겠다 싶었는데 마침 옆 자리에 앉게 되어 난생 처음으로 이런 표현까지 쓰게 되었다: I'm honored to meet you. 페리를 보자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튀어나왔지만, 그전까지는 좀처럼 쓸 수 없는 표현이라고 생각했었다. 10년 전에 당신의 책을 읽었었노라고 얘기했더니 무슨 책이냐고 묻는데, "오, 그러냐"며 웃는 식의 미국인 특유의 어떤 친절함의 모드가 이 사람에게는 없다는 게 단박에 느껴졌다. 그 건조함도 좋았다. 아무튼, 소장의 인사말과 건배, 연구소 staff들의 소개, 그리고 이어진 visiting scholar들과 visiting fellow들의 인사.
식사를 하면서 같은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페리가 처음 하우징에 대해 전부에게 묻는 것으로 시작해서 보스톤의 날씨, 미국의 대선, 선거제도 등으로 화제가 번져나갔다. 어쩌다 쿠바 이야기가 나와서 내가 쿠바 여행이 꿈이라며 며칠 전 버스 정류장에서 만났던 페드로 아저씨 얘길 했다. 그가 "29년째 여기 살지만, 미국인들은 절대 믿어선 안될 사람들"이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농담처럼 했더니 페리가 웃으면서도 진지하게 그의 말이 맞는 얘기라고 두 번이나 연거푸 반복해서 말했다. 현재의 쿠바는 "in transition"에 있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누군가 꺼내자 페리는 갑자기 돌연 정색을 하면서 transition이란 과연 무엇이냐, 나는 그런 표현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 미국이야말로 완전히 transition을 보여주는 나라다, 그리고 transition이라는 표현은 시장, 자본주의, 민주주의 등과 같은 한 방향을 "올바른 방향"으로 가정하고 전제하는 경우에 쓰는 것이다... 라며 예외적으로 한참을 열띠게 반응했다.
식사를 하면서 석사논문 얘기를 하는데, 그 파업은 성공적이었느냐고 그가 묻기에 honestly, 나는 무엇이 '성공'인지 모르겠다고 덧붙이면서--사실 이건 석사논문을 쓰던 당시부터 나에게 너무도 고통스러울 정도로 핵심적인 문제였다--파업의 타결 결과와 이후의 일들에 대해 간단히 답했다. 그런데 그는 "맞다, 무엇이 성공인지는 참 말하기 어려운 문제다"라고 또 골똘한 표정으로 두어번을 더 중얼거리는 것이다. 확실히 건조하고 매사에 진지한 사람이다. 누군가 나에게 한국의 미국 쇠고기 수입과 촛불시위에 대해서 묻는 바람에 한참동안 촛불시위가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촛불시위에 대해 이야기하자니 참으로 막막하고 복잡한 심경이었다. 미국 쇠고기를 수입하면 시장 메커니즘에 의해서 소비자들이 쇠고기를 낮은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고, 고전문학을 전공하는 중국인 학자가 이야기했다. 중국의 학자들--그들은 물론 동질적인 집단으로 지칭될 수 없으나--에게 자본주의는 어떤 의미겠는가를 속으로 묻고 또 생각했다.
어제는 일정을 모두 마친 후 카페에서 정말 몰두해서 책을 읽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오늘은 책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자전거를 사고, 두 군데의 자전거 가게에서 lock과 basket을 사고... 족히 십 년만에 자전거를 타고 한참을 달려서 그런가. 카페에서 책을 읽는데, 육체적인 피로에 정신적인 피로감이 더해진 기분이었다. 피로해서인지 어떤 면에서는 조금 허전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이런 이벤트들이 어서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뭐랄까, 일종의 절연의 상태로 몰두해서 읽고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일도 이벤트가 있다. 아무래도 당분간은 이벤트 모드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인사하고 대화하면서 보내게 될 듯하다. 혼자 있고 싶은 마음이 강렬하지만, 사람들과의 만남에 대한 기대와 설레임을 결여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appreciation. 나는 번역이 어려운 영어단어를 생각할 때마다 늘 이 단어를 떠올리곤 하는데, 아무튼 사람들과의 만남에 대한 appreciation을 충분히 갖춘 사람이고 싶다.
이방의 도시에 와서 경험하고 보고 느끼는 것들을 착실히 기록해야겠다고 다짐했었으나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절실한 경험과 관찰과 생각이라 해도 기록하지 않으면 보존되지 않는다. 각인하기 위한, 혹은 그 어느 시점에선가 상기하기 위한 노력.
오늘은 패컬티들만 출입할 수 있다는 faculty club에서 일종의 리셉션이 있었다. faculty club의 실내는 구조와 가구와 인테리어와 serve하는 사람들의 태도까지, 그야말로 미국 상류층 엘리트들의 격식을 느끼게 했다. 어제는 가족들까지 전부 동반해서 미리 예약된 보스턴 시내 duck tour를 하고 legal seafood에서 가재요리로 식사를 했었다. 한편으로는 참 융숭한 대접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 많은 펀딩이 어떻게 가능한가 생각해보았다. 이게 다 학생들의 비싼 등록금 덕이려니 하고 결론내렸었는데 오늘 문득 떠올려보니 연구소는 재정적으로 하버드로부터 독립되어 있다. 정확한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visiting scholar 한 명을 위해 연구소에서 지출하는 재정이 1년에 10만불이라는 이야기를 어제 얼핏 들었다. 왜, 어떻게, 이런 펀딩이 이루어질까.
구조와 가구와 인테리어 모두가 미국 상류층 엘리트들의 격식을 느끼게 하는 faculty club에 들어서자, 나는 갑자기 이 모든 것들이 영화 스크린에서 툭 튀어나온 세트장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 상류층 엘리트들의 격식이라는 게 그만큼 이질적으로 느껴졌거나 혹은 내가 너무나 관찰자적이었던 것일 테다. 아무튼 왠지 그리 환호하고 싶지 않아서, 나는 공연히 화장실로 들어가 이미 깨끗한 손을 다시 씻었다. 잠시 후, 예약된 룸으로 들어가자 이미 셋팅된 원형 테이블이 여러 개 있었고, 각 테이블에는 자리마다 인쇄된 이름들이 놓여있어 참석자들의 좌석이 모두 사전에 배치되었음을 알렸다. 사람들이 모두 두리번거리며 본인의 이름을 찾기 위해 테이블 사이를 오갔고, 나는 모든 테이블들을 다 돌아다닌 후에야 내 자리가 엘리자베스 페리의 바로 옆 자리인 것을 알게 되었다.
엘리자베스 페리는, 내가 석사 2학기 때 읽었던 Shanghai on Strike의 저자다. 중국에서의 노동자들의 파업을 다룬 책이었는데 무척 인상 깊어서, 그가 대체 어디서 뭐하는 사람인가를 찾아보던 기억도 생생하다. 석사논문을 쓸 때 그 책이 내 논문의 중요한 reference 중 하나였음도 물론이다. 어떤 면에서 나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얼떨결에 visiting fellow를 지원했을 땐, 인터뷰하러 온 패컬티가 우연히도 민족주의를 연구한 인류학과 교수여서 어정쩡하게 민족주의 얘기를 얼버무렸던 proposal 덕에 민족주의 얘기를 한참 나눴었다. fellowship을 받게 됐다는 연락을 받고는 기쁘다기보다 의아하다는 생각이 앞설 무렵, 마침 또 그즈음에 연구소 소장으로 엘리자베스 페리가 새로 취임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엘리자베스 페리를 드디어 오늘 처음 만나게 되었다. 중국에서 컨퍼런스가 있었고, 캠브릿지에 어제 도착했노라고 그가 말했다. 처음 페리를 알아보았을 때 그와 인사라도 나누면 좋겠다 싶었는데 마침 옆 자리에 앉게 되어 난생 처음으로 이런 표현까지 쓰게 되었다: I'm honored to meet you. 페리를 보자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튀어나왔지만, 그전까지는 좀처럼 쓸 수 없는 표현이라고 생각했었다. 10년 전에 당신의 책을 읽었었노라고 얘기했더니 무슨 책이냐고 묻는데, "오, 그러냐"며 웃는 식의 미국인 특유의 어떤 친절함의 모드가 이 사람에게는 없다는 게 단박에 느껴졌다. 그 건조함도 좋았다. 아무튼, 소장의 인사말과 건배, 연구소 staff들의 소개, 그리고 이어진 visiting scholar들과 visiting fellow들의 인사.
식사를 하면서 같은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페리가 처음 하우징에 대해 전부에게 묻는 것으로 시작해서 보스톤의 날씨, 미국의 대선, 선거제도 등으로 화제가 번져나갔다. 어쩌다 쿠바 이야기가 나와서 내가 쿠바 여행이 꿈이라며 며칠 전 버스 정류장에서 만났던 페드로 아저씨 얘길 했다. 그가 "29년째 여기 살지만, 미국인들은 절대 믿어선 안될 사람들"이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농담처럼 했더니 페리가 웃으면서도 진지하게 그의 말이 맞는 얘기라고 두 번이나 연거푸 반복해서 말했다. 현재의 쿠바는 "in transition"에 있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누군가 꺼내자 페리는 갑자기 돌연 정색을 하면서 transition이란 과연 무엇이냐, 나는 그런 표현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 미국이야말로 완전히 transition을 보여주는 나라다, 그리고 transition이라는 표현은 시장, 자본주의, 민주주의 등과 같은 한 방향을 "올바른 방향"으로 가정하고 전제하는 경우에 쓰는 것이다... 라며 예외적으로 한참을 열띠게 반응했다.
식사를 하면서 석사논문 얘기를 하는데, 그 파업은 성공적이었느냐고 그가 묻기에 honestly, 나는 무엇이 '성공'인지 모르겠다고 덧붙이면서--사실 이건 석사논문을 쓰던 당시부터 나에게 너무도 고통스러울 정도로 핵심적인 문제였다--파업의 타결 결과와 이후의 일들에 대해 간단히 답했다. 그런데 그는 "맞다, 무엇이 성공인지는 참 말하기 어려운 문제다"라고 또 골똘한 표정으로 두어번을 더 중얼거리는 것이다. 확실히 건조하고 매사에 진지한 사람이다. 누군가 나에게 한국의 미국 쇠고기 수입과 촛불시위에 대해서 묻는 바람에 한참동안 촛불시위가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촛불시위에 대해 이야기하자니 참으로 막막하고 복잡한 심경이었다. 미국 쇠고기를 수입하면 시장 메커니즘에 의해서 소비자들이 쇠고기를 낮은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고, 고전문학을 전공하는 중국인 학자가 이야기했다. 중국의 학자들--그들은 물론 동질적인 집단으로 지칭될 수 없으나--에게 자본주의는 어떤 의미겠는가를 속으로 묻고 또 생각했다.
어제는 일정을 모두 마친 후 카페에서 정말 몰두해서 책을 읽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오늘은 책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자전거를 사고, 두 군데의 자전거 가게에서 lock과 basket을 사고... 족히 십 년만에 자전거를 타고 한참을 달려서 그런가. 카페에서 책을 읽는데, 육체적인 피로에 정신적인 피로감이 더해진 기분이었다. 피로해서인지 어떤 면에서는 조금 허전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이런 이벤트들이 어서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뭐랄까, 일종의 절연의 상태로 몰두해서 읽고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일도 이벤트가 있다. 아무래도 당분간은 이벤트 모드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인사하고 대화하면서 보내게 될 듯하다. 혼자 있고 싶은 마음이 강렬하지만, 사람들과의 만남에 대한 기대와 설레임을 결여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appreciation. 나는 번역이 어려운 영어단어를 생각할 때마다 늘 이 단어를 떠올리곤 하는데, 아무튼 사람들과의 만남에 대한 appreciation을 충분히 갖춘 사람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