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회가 열리는 보스턴에서 컨벤션 센터의 노동자들이 쟁의 중이라는 이야기를 메일링리스트로 여러 차례 접했다. 파업에 대한 지지서명을 요청하는 메일도 여러 분과에서 받아보았다. 주된 이슈는 health insurance와 pension plan, 그리고 협상 중에 사측이 노조의 협상단 두 명을 해고했다고. 파업의 정황을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은 채였지만, ASA 노동운동 분과에서 노조의 파업을 지지하는 회합을 갖자고 메일을 보내왔기에 정혜와 함께 쉐라톤호텔에서 열린 그 회합에 참석했다.
미국의 파업현장을 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는데, 실제 지지방문을 하지는 않고 다만 파업을 지지하는 사회학자들이 함께 박수를 치며 구호를 외쳤다. 항의서한 같은 것을 전달하는 것 같기도 했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아 제대로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아주 큰 소리로 구호를 제안하는 사람이 그곳에도 있었다. 회합을 마치고 학회장으로 돌아가는 길, 파업 중인 조합원들이 유인물을 나누어주고 있었다. "미국사회학회의 구성원여러분들이 보내주신 지지와 격려를 우리는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와 같은 문장들이 적혀 있었다. 파업 중인 이랜드의 조합원들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서울을 떠나기 전날 농성장에 찾아갔었는데, 아무도 만나지 못하고 돌아왔다. 대상은 불명료하지만, 너무나 안타깝게 그리웠다.
학회장에 돌아와 프로그램을 펼쳐들고 흥미를 끄는 세션을 찾다가 문득 "아도르노 이후: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현재적 유산(After Adorno: The Legacy of the Frankfurt School for Today)"이라는 제목을 발견했다. 아도르노라든지 프랑크푸르트 학파, 너무 오랜만에 듣는 이름들. 오래 전 대학생이던 시절에는 사회학과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던 그 이름들이 묵직한 사회학 컨퍼런스 프로그램 속에 매우 생경하게 인쇄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invited session의 패널리스트 명단에서 Stanley B. Aronowitz라는 이름도 오랜만에 발견. 이유 없이 반갑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은 다른 세션에 들어갔지만 너무 재미가 없어서 금세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덕분에 결국 "아도르노 이후" 세션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 리버럴하면서도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작년 세계체제론 세션을 상기시켰다. 의자가 모자르니 청중들은 아무렇게나 카페트 위에 앉아있었고, 누군가는 세션 도중에 의자에서 내려와 아예 카페트 위에 누워서 발표를 듣기도 했다. Aronowitz는 결국 이슈는 정치(학)(politics)의 문제라고 말했다. 아주 practical하게 도움이 되는 세션들이 있기도 하지만 반면 이렇게 아주 커다란 이야기를 하는 세션들이 생각할 것들을 많이 남긴다. 카페트 위에 앉아서 몇 가지의 메모를 끄적이며 Aronowitz는 인상이 좋군, 속으로 생각했다.
이번에도 아주 우연히 학회 등록하는 곳에서 마주친 목 선배와 저녁을 먹기로 했다. 저녁약속을 하고 돌아선 후, 그 선배는 인상이 무척 차분하던데요, 누군가 말했다. 그 인상이 지난 십여년 동안 한번도 바뀐 적이 없다고 말하니 놀라워했다. 그런 사람은 한번도 본 적이 없어요. 그리하여 저녁식사를 하러 가면서도, 그 선배가 참 좋은 사람이라고 새삼스럽게 내내 되뇌이게 되었다. 목 선배의 와이프도 처음으로 만났는데, 만나자마자 친근하게 느껴져서 기분이 좋았다. 오랜만에 나누는 많은 얘기들.
시차 때문에 정상인의 리듬과 유사하게 몸이 움직이고 있다. 이게 깨지지 않길 바라지만 과연 그럴 수 있으려나.
미국의 파업현장을 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는데, 실제 지지방문을 하지는 않고 다만 파업을 지지하는 사회학자들이 함께 박수를 치며 구호를 외쳤다. 항의서한 같은 것을 전달하는 것 같기도 했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아 제대로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아주 큰 소리로 구호를 제안하는 사람이 그곳에도 있었다. 회합을 마치고 학회장으로 돌아가는 길, 파업 중인 조합원들이 유인물을 나누어주고 있었다. "미국사회학회의 구성원여러분들이 보내주신 지지와 격려를 우리는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와 같은 문장들이 적혀 있었다. 파업 중인 이랜드의 조합원들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서울을 떠나기 전날 농성장에 찾아갔었는데, 아무도 만나지 못하고 돌아왔다. 대상은 불명료하지만, 너무나 안타깝게 그리웠다.
학회장에 돌아와 프로그램을 펼쳐들고 흥미를 끄는 세션을 찾다가 문득 "아도르노 이후: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현재적 유산(After Adorno: The Legacy of the Frankfurt School for Today)"이라는 제목을 발견했다. 아도르노라든지 프랑크푸르트 학파, 너무 오랜만에 듣는 이름들. 오래 전 대학생이던 시절에는 사회학과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던 그 이름들이 묵직한 사회학 컨퍼런스 프로그램 속에 매우 생경하게 인쇄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invited session의 패널리스트 명단에서 Stanley B. Aronowitz라는 이름도 오랜만에 발견. 이유 없이 반갑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은 다른 세션에 들어갔지만 너무 재미가 없어서 금세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덕분에 결국 "아도르노 이후" 세션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 리버럴하면서도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작년 세계체제론 세션을 상기시켰다. 의자가 모자르니 청중들은 아무렇게나 카페트 위에 앉아있었고, 누군가는 세션 도중에 의자에서 내려와 아예 카페트 위에 누워서 발표를 듣기도 했다. Aronowitz는 결국 이슈는 정치(학)(politics)의 문제라고 말했다. 아주 practical하게 도움이 되는 세션들이 있기도 하지만 반면 이렇게 아주 커다란 이야기를 하는 세션들이 생각할 것들을 많이 남긴다. 카페트 위에 앉아서 몇 가지의 메모를 끄적이며 Aronowitz는 인상이 좋군, 속으로 생각했다.
이번에도 아주 우연히 학회 등록하는 곳에서 마주친 목 선배와 저녁을 먹기로 했다. 저녁약속을 하고 돌아선 후, 그 선배는 인상이 무척 차분하던데요, 누군가 말했다. 그 인상이 지난 십여년 동안 한번도 바뀐 적이 없다고 말하니 놀라워했다. 그런 사람은 한번도 본 적이 없어요. 그리하여 저녁식사를 하러 가면서도, 그 선배가 참 좋은 사람이라고 새삼스럽게 내내 되뇌이게 되었다. 목 선배의 와이프도 처음으로 만났는데, 만나자마자 친근하게 느껴져서 기분이 좋았다. 오랜만에 나누는 많은 얘기들.
시차 때문에 정상인의 리듬과 유사하게 몸이 움직이고 있다. 이게 깨지지 않길 바라지만 과연 그럴 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