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괜찮은 비디오 한편.
이 오래된 영화를 뜬금없이 집어들고 온 최선생 덕에
흑인에게 처음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겼다는 수상작을 감상.
우연히 어떤 한 지점을 교차하는
서로 다른 삶들에 대한 환기,
그것에 어떤 극적인 의미도 부여하지 않는
건조한 연출.
그 여자와 그 남자가 아무리 서로에게 차츰 애틋해져도
그 건조함은 도무지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애틋함은 그 건조함에서 비롯되는 것.
사형집행 장면은 정말이지 건조했고
건조해서 더욱 견딜 수 없이 잔혹하게 느껴졌고
그래서인지 <유형지에서>라는 카프카의 소설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문득, 카프카가 그린 유형지란
역시나 지금 우리들의 이야기인가보군, 이란 생각도.
가장 가슴 아프고 슬프게 느껴진 것은
천진하게 느껴질 만큼 무표정한 얼굴로
몰래 숨겨둔 쵸코바를 꺼내어 먹던 아들의 표정.
사형수 아버지를 둔 극빈층의 비만한 그 아이가
삶에서 기대할 것은 오직 초콜릿 뿐이라고,
도대체 그것 말고 어떤 기대가 있을 수 있겠느냐고,
나 혼자 그게 서러워 한참 가슴에 통증이 앉았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설마 그럴리가요, 검둥이한테요>라던,
정말이지 어리둥절한 눈동자로 조용히 묻던 할 베리의 음성.
처연하고 처연해서
그 어떤 화려했던 모습보다 더 아름답게 느껴졌던.
아침마다 그 자신 구역질을 하면서도
사형집행 직전에 구역질 하던 신참 교도관 아들을
구타하던, 교도관 아버지도 인상적.
아들의 죽음에 울지 않는 그의 모습은 오히려 한없이 쓸쓸했고
아버지를 양로원으로 보내는 그의 모습은 왠지 후련해 보였다.
그러니, 이 영화를
사형에 관한 영화라거나
인종차별주의에 관한 영화라거나
극빈층에 관한 영화라거나, 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레떼르의 함축성이 이렇게 무너질 때면
괜히 무력한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사실, "인종차별주의"란 단순한 레떼르가 될 수 없는 것인데
"인종차별주의에 관한 영화"는 레떼르가 되어버리고 만단 말이다...)
*
감독의 이름이 낯익어서 생각해보니
익숙한 학자의 이름이었다, 마크 포스터.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