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일월(日月)이여,
내 마음 더 여리어져
가는 8월을 견딜 수 없네.
9월도 시월도
견딜 수 없네.
흘러가는 것들을
견딜 수 없네.
사람의 일들
변화와 아픔들을
견딜 수 없네.
있다가 없는 것
보이다 안 보이는 것
견딜 수 없네.
시간을 견딜 수 없네.
시간의 모든 흔적들
그림자들
견딜 수 없네.
모든 흔적은 상흔이니
흐르고 변하는 것들이여
아프고 아픈 것들이여.
- 정현종, "견딜 수 없네"
::
정현종과 윤후명,
그 유명한 시인과 소설가의 수업을 들으면서
역시 작가는 작품으로 읽어야 하는군, 이란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어제던가
환갑이 넘은 늙은 시인의 새 시집 기사를 읽고,
이제 겨우 서른의 문턱을 넘는 나는
그만그만한 친구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다
늦은 밤 집으로 돌아와
그 시를 다시 검색해 읽어본다.
백발의 노시인은
마음 더 여리어져
견딜 수가 없다 한다.
흘러가는 것들
사람의 일들을
견딜 수가 없다고 한다.
견딜 수 없는 모든 것들이
이제 지긋지긋하기만 한 나는
그조차 지루하다 여기며
도대체 네가 견딜 수 없는 그것이
과연 무엇이더냐고
제 자신에게 묻던 한때를 생각한다.
더이상 그런 질문도
그런 의지도
그런 결단과 결단과 결단들도
도무지 새로운 것이라고는 없어서,
오랜 마찰로 윤이 나는 굳은 살처럼
그렇게 제 자신에게 익숙해진 그 무엇을 받아들이고
이제는 그 사실조차 잊는다.
그렇지만 주머니 속의 송곳은
언제인지도 모르게 주머니 한 구석을 비집고 나와
언제 팔뚝에 흠집을 낼지 모르는 일.
다행히 나는 그것을 일찍 발견해
다시 주머니에 고쳐 넣는다.
그러니 적어도 지금은 괜찮다.
와인에 취미를 붙인 친구 덕에
각기 다른 종류의 와인 세병을 비우고 돌아온 밤.
생일이라고 사들고온 케?葯 와인케?揚潔珦릿?BR>오늘은 뜻하지 않게 와인으로 도배된 하루.
집에 돌아와 거울을 보니
이와 입술이 온통 보라색으로 물들어있다.
술이건 시간이건 사람이건 그리고 다른 무엇이건
이렇게 온통 흔적을 남긴다.
2003.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