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당시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고
그 후에도 우연히 영화채널에서 몇 번을 더 보았지만
그 때마다 잘 만든 영화라는 생각에 금이 가지 않았다.
소설을 먼저 읽은 사람들의 빈축을 사기도 하고
원작소설의 작가가 곳곳에서 불만을 토로했다고도 하지만
소설과 영화는 엄연히 다른 장르.
심지어 소설을 이 정도로 영화화했다니
그조차 가산점을 주어야 할 이유.
시간이 지날수록 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목은
이 두 남녀의 파국에 관한 이야기이다.
어이없게도 이 두 남녀는
여자가 만든 콩나물비빔밥 대신
라면을 끓여먹는 남자의 행동 때문에 헤어지게 된다.
결국, 이 두 남녀는
"콩나물비빔밥 때문에" 파국을 맞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두 남녀가 "콩나물비빔밥 때문에" 헤어지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거짓이 아니다. 심지어 엄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 엄연한 사실은 놀랍게도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장황한 설명이 더해진다고 해서
애초의 그 무언가가 복원되거나 전달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진실은 저 너머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좇는 인과관계란 이처럼 허약한 것이고
사건과 과정에 대한 설명이란 이처럼 취약한 것이다.
직업정신을 발휘해서 말해보자면
사회(과)학에서의 인과관계나 설명 역시 매한가지이다.
방법론에 관한 끊임없는 질문이 필요한 것은 이와 같은 이유.
아무튼, 생각난 김에
사건과 과정의 출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면
이 두 남녀의 만남의 경위는
다름 아닌 맞선.
"두 분이 어떻게 만나게(시작하게) 되셨어요?"라는 질문은
어쩌면 이처럼 코믹한 것인지 모른다.
2004.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