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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레탕티즘

세바스티앙 살가도(Sebastião Salgado)



세바스티앙 살가도(Sebastião Salgado).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작가 중 한 사람.
2주 전쯤 그의 사진전에 다녀왔다.
감사하게도, 근래 가본 사진전 중
가장 흠 없는 사진전이었다.

경제학 박사과정을 마친 그가
삼십이 다 된 나이에 불현듯 사진을 시작하게 된 것은
우연히 방문한 커피농장에서
가난과 가뭄에 시달리는 아프리카인들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건축을 전공하는 아내의 카메라를 빌려간 그 아프리카행에서
남은 인생동안
경제학 논문을 쓰기보다는 사진을 찍기로 결심했다고.
그런 연유에서인지, 그의 사진 작업은
<노동자들: 산업시대의 고고학 Workers :An Archaeology of the Industrial Age> 이나
<이주: 변천하는 인류 Migrations: Humanity in Transition> 같은
대규모의 장기프로젝트로 이루어져 왔다.

그는 결코 사진을 경유하여
피사체를 대상화시키지 않는다.
아니, 사진을 <찍는> 행위는, 인류학자의 <쓰는> 행위처럼
근본적으로 대상화의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지만,
최소한 그는 그 문제에 대해 눈 감지 않는다.
그의 사진작업은 언제나 현지에서
수주일간 머물며
삶과 상처를 함께 직면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끝까지 외지인으로 남지 않기 위해 그는
단 한명의 조수도 대동하지 않은 채
35mm 필름 카메라를 들고
아프리카의 사막과 남미, 아시아의 가난한 대륙을
자동차 없이 누비고 다녔다.

그처럼, 그의 작업의 태도에는
분명한 철학이 담겨 있다.
그러나 내가 그의 사진에 매료되었던 것은
그의 사진이 전달하는 함축적 의미나 이슈
그 자체 때문이 아니다.
사진이라는 장르가 가지는,
기록으로서의 의미심장한 고유성에
물론 고개 숙이지 않을 수 없지만,
그의 사진은 그의, 뭐랄까,
이 세계에 대한 리얼리즘적인 치밀한 주제의식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그 이전의 것들을 전달하는 힘이 있다.

예컨대,
아프리카 사헬 지역의 가난한 여자들이
모래바람에 맞서 걸어가는 사진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삶의 비극성이나 세계의 비참 이전에
그 여자 한 사람의 고유성과 숭고함이 묻어나와
심지어 아름답다, 란 생각이 들기까지 하는 것이다.
전시회장을 돌며 그의 사진에
아름답다, 란 감정을 가져도 되는 것인지
수분간 당혹해했으나
그것이야말로 그의 사진이 가지는 푼크툼,
대상에 대하여 가지는 진정한 경외가
그 삶의 중핵을 건드릴 때에만 얻어질 수 있는
깊은 울림이 아닌가 하여
잠시 경건한 마음마저 들기도.

그의 사진에는 늘 공기가 있다.
남미의 고원지대를 휘감는 바람,
아프리카의 모래 섞인 뜨거운 공기,
브라질 금광의 무더운 숨, 같은,
그의 사진에서 항상 느껴지는
공기의 움직임과 온도와 밀도처럼
보이지 않는 것을 느끼게 하는 일을
나는 어떻게 할 수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