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사위던지기

20061226


며칠 전, 잠에서 깰 듯 말 듯 몽롱한 상태에서 문득, 사람의 고통이란 것에 대해 생각한 적이 있다. 목부터 등 언저리까지를 지긋이 감싸는 근육통 때문이었는데, 내가 느끼는 이 통증에 대해 과연 어느 누가 적정한 기준으로 가늠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 의학적인 검사들과 검사 결과로 파악된 수치들과 그 모든 객관적인 지표들이 고통의 정도를 절대적으로 반영할 수는 없는 것이고, 내가 느끼는 고통이란 고통에 대한 가장 '과학적' 대처인 의학의 영역에서조차 '문진'을 통해서만 가장 적절하게 토로되고 전달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느끼는 통증이 어떤 신적인 작용에 의해서 다른 누군가에게 '그대로 전이'된다면, 그 사람은 지금 나의 이 통증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할까, 라는 생각. 잠결에 이런 생각에 빠지다, 우리가 느끼는 신체적인 통증이란 게 과연 전달되거나 공감될 수 있는 것일까, 라는 무소용한 질문에 이르렀다. 나의 치통이 그의 치통과 동일한 종류의 통증일지 도저히 알 수는 없다. 우리는 비교의 객관적인 준거를 가지고 있지 않다. 단지 내가 느끼는 통증, 내가 겪는 고통만이 타인의 아픔을 헤아리는 유일한 준거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타인의 고통이란 오직 나 자신의 고통을 통해서만 헤아려질 수 있는 것일까. 언젠가 읽었던, 치통의 비유를 썼던 어느 철학자의 글이 생각났다. 내가 인간인 한, 그도 인간인 한, 그가 느끼는 통증을 결국 나도 헤아릴 수는 있는 거겠지. 그러나 언어는 얼마나 불완전한가. 고통에 대한 어떤 상세한 묘사도 고통 그 자체를 전달할 수는 없다. "바윗덩어리를 들러맨 것처럼 아프다"거나 "누르면 자지러질 만큼 아프다"고, 혹은 "바늘로 찔러대는 것처럼 아프다"고, 온갖 비유와 설명을 동원해서 이야기한다 해도 통증 자체를 전달할 수는 없다. 그와 동일한 종류의 고통(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내가 경험해봤을 때에만 비로소 그 고통을 헤아리고 가늠해볼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