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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위던지기

20060414


일주일에 하루, 금요일 하루만큼은, 어떤 약속도 일정도 없이 혼자만을 위해 온전히 할애하는 시간으로 만들어두겠다고 다짐하였으되, 그 다짐이 무색하게 두 가지의 일정이 생기고야 말았다. 도무지 어떤 소용도 찾을 수 없었으나 불가피하게 시간을 투여해야 했던 모임. 그리고 가까스로 시간을 맞춘 삼성동에서의 회의.
 
덕분에 한낮의, 이제 조금 따갑게까지 느껴지는 햇볕 안을 서성일 수 있었다. 오후의 회의를 위해서 지하철 2호선을 뚝 절반으로 잘라 반바퀴를 돌아야 하는 행선지를 생각하며 오랜만에 음악을 준비한 덕분에, yo la tengo와 kings of convenience가 햇볕처럼 몸 속으로 쏟아져들어온 날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다시금 찬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 너무나 많은 축복들이 삶의 근방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대미를 장식한 것은 알랭 드 보통이었다. 그의 유머와 따뜻함과 깊이가 나를 여러 번 소리 없이 웃게 만들었다. 이어폰에서 흘러나오고 있던 음악처럼, 축복을 느끼게 하는 글. 그리하여 나 자신에게 다시 한번, 곧 무색해질 다짐을 내밀었다. 정말이야, 일주일에 하루, 금요일 하루만큼은, 어떤 약속도 일정도 없이 나만 위해 온전히 할애하는 시간으로 해둘께.
 
하루 종일 혼자서 생각만 하고, 글만 쓰는 그 하루가, 정말 나의 것이 될 수 있을까? 쉽게 부서지는 희망 같은 것이라 해도 기분은 좋은 계획이다. 무엇보다, 음악을 들어야겠다. 음악을 들은 게 너무 오랜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