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월 중순이라기엔 매서운 추위. 하루 종일 황사낀 추운 거리를 걸어다녔다. 몇주째 죽지 않고 늘어붙어 있는 몸살기가 도지나 싶더니 하늘에서 눈발이 날렸다. 팔랑, 한 송이 떨어지나 싶더니 우수수 떨어지던, 비듬 같은 눈발.
십수년 전에도 삼월 하순께에 이렇게 눈이 내렸다. 대학 신입생이었던 나는, 올 것이 왔군, 하는 심정으로 대학 입학하고 처음 있었던 교내 집회에 나갔다. 아주 초라한 숫자의 사람들이 학생회관 앞에 모여 있었다. 우루과이라운드와 WTO, 쌀 수입 개방 반대 등을 내건 집회였다.
지독한 기억력. 신방과 학생회장인 짧은 머리의 안경을 쓴 여자선배가, 농산물시장이 개방되면 쌀값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자취를 하는 자신은, 아마도 값싼 미국쌀을 먹게 될 것이라고 했다. 왠지 선의로 남의 집회에 와서 도와주는 역할을 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 이유를 알게 된 것은 그리 멀지 않은 날의 일이었다.
이상한 날이었다. 나는 자뭇 심각했지만 쌀 시장 개방에 대해서는 아니었다. 백명이나 될까 싶은 무리를 주도하는 선배들과 저 뒤에서 삼삼오오 담배를 피우는 선배들. 그 모든 광경들이 몽타주 화면처럼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과 동기 여자아이 하나가 테니스채를 들고 학생회관 앞을 스쳐지나가고 있었는데, 얼핏 집회장면을 쳐다보며 지나치던 그 아이의 눈빛이 아직도 생생하다. 혀가 짧은 신방과 학생회장의 마이크 잡은 목소리가 웅웅거렸다. 그리고 하늘에서 떨어지던, 눈, 눈.
삼월 하순이라기엔 이상하게 스산한 날씨에 눈발마저 떨어지고 있었고, 백명이 될까 말까 한 무리들은 학생회관을 떠나 교문 앞으로 나섰다. 전경이 막아서고 학생들은 버텼다. 실랑이 끝에 위아래 청남방과 청바지를 입은 백골단이 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다. 아주 초라한 교내집회였는데, 백골단은 곤봉을 휘두르며 뒤쫓았고 학생들은 사력을 향해 도망쳤다. 굽 높은 구두를 신고 있던 나는 정문에서 굴다리를 지나 오늘의 책과 난다랑 사이의 골목을 들어서고도 한참을 더 달렸다. 그러고도 한참을 백골단이 좇았다. 그러는 새에도 하늘에서 떨어지던, 눈, 눈.
그날 밤. 지금은 없어진, 행랑채, 라는 이름의 술집에서 막걸리를 마셨다. 그렇고 그런, 과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던, 정해진 사람도 시간도 없던 그런 술자리. 메모판에 과 이름과 술집 이름만 적어두면 어디선가 하나둘 나타나 밤이 늦어서야 파하곤 하던 그런 술자리. 별 말 없이 막걸리를 마시고 있는데, 뒤늦게 들어온 선배 하나가 물었다. 처음 집회를 나가니 기분이 어떻더냐고.
친밀하지는 않았지만 말이 별로 없던 선배여서 유도심문 같은 느낌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을 법한 대답을 했다. 전경이나 백골이나, 왜 그 사람들과 싸워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 사람들과 싸우려는 건 아니잖아요.
결국 내 대답에, 어느 한 사람도 반응하지 않았다. 질문했던 선배는 무언가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고, 별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는 다들 빈잔에 술을 부었을 것이다. 그리고는 다른 이야기들이, 빈잔에 부어지는 술처럼, 그 술자리를 채웠을 것이다.
삼월에 눈이 내리면, 왠지 그때가 생각난다. 못 잊을 기억인 것도 아니고, 어떤 중요한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순간 순간이 아주 선명하고 정교하게 뇌리에 남아있다. 지독한 기억력. 나조차 스스로에게 놀라게 되는 이 지독한 기억력.
오늘 낮, 입을 꾹 다물고 황사낀 교정을 걷고 있던 나에게, 최선생이 말했다. 올해도 신입생들이 있겠네. 신입생들은, 참 좋겠구나. 뭔가 시작한다는 기분이 있겠지. 그리고 나서, 아무 대답도 않는 내게 그가 덧붙였다. 그래도, 뭔가 넓은 세계로 나간다는, 그런 기분 같은 건 아무래도 없겠지. 이제는 그게 무엇이든, 고등학교때 충분히 접할 수 있잖아.
생각해보니 참 많은 것이 변했다. 지금 대학에 다닌다면 아마 나도 많이 다를 것이다. 대학에 들어가면 꼭 연극과 야학을 하겠다고 다짐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대학에 입학한지 일주일도 안되어, 연극과 야학은 함께 할 수가 없다고 결론내리고, 별 고민 없이 연극동아리를 포기했다. 생각해보면 참 재미있는 일이다.
지금쯤 다시 대학에 들어간다면, 철학을 전공할 것이고, 혹은 건축이나 한의학을 전공할 것이고, 꼭 연극동아리에 들어갈 것이다. 연극이 아니라 영화동아리이건 음악동아리이건 지금 이 경우에는 동의어이다. 그림을 그리는 동아리에 들어갈지도 모르겠다. 혹은 사진동아리일 수도. 그리고 또 다른 많은 선택들이 있겠지.
하지만 십수년전의 그날로 돌아가 다시 대학생활을 시작한다면, 분명히 연극동아리를 포기할 것이다. 눈발이 떨어지는 을씨년스러운 날, 학생회관 앞에 서서 자뭇 심각하게 주위의 광경을 주시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는 그날밤 막걸리집에서 이상한 말들을 늘어놓다 웃기도 하며 잔을 비워대겠지.